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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16>, 혐오의 오브제 전시하기

 

권시우 a.k.a 흔들리는 죠

 

이수경 개인전 <F/W 16>에서 전제하고 있는 혐오스러운 서울의 풍경에서 편집해낸 이미지들의 직관적인 꿰매기로 탄생한 시각적 혼합물1)은 일종의 덩어리들로 주어져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남성-노인의 옷차림으로부터 빌려온 각종 패브릭과 장식물들은 이수경의 직관에 따라 재구성된다. 작가는 결국 덩어리로 귀결되는일련의 조각들에 대한 재단법을 ‘LA갈비 도축법이라 명명하는데, 이로써 절단된 면들은 특정한 조형의 목적성에 부합하는 것이라기보다 효율적으로 생산/유통되기 위해 가동되는 조립라인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덩어리는 패브릭으로 상징되는 의복의 소재들로 조합된 결과다. 이때 조합의 과정은 엄연히 실재하는 혐오의 대상을 나름의 방식으로 열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1) 기억형상

 

기억형상은 일전의 <던전(Dungeon)>프로젝트에 제시된 개별 작가들의 작업을 관통하는 공통의 키워드다. 공간 내부를 뒤덮은 다소 산란한 이미지 연속체 속에서 포착되는 일본 아니메의 흔적들, 전투형의 미소녀나 도트 형식으로 깨져버린 레벨 디자인 등은 은연중에 90년대 일본의 서브컬처에서 파생된 오타쿠 취향을 암시한다.2) 그러나 앞선 연속체는 체계적인 서브컬쳐 데이터베이스의 나열이 아니라 특정 사용자/주체에 의해 편의적으로 사용/희석됨으로써 (특히나 이수경, 한진의 작업 구간에서) 2D미소녀라는 최소 단위만이 잔존하는, 실상 구체적인 출처가 부재한 어렴풋한 형상들로 구성될 뿐이다. 이수경이 반복적으로 드로잉한 다소 흐릿한 필치의 여성 캐릭터는 결코 전형화된 2D미소녀가 아니지만, <던전(Dungeon)>의 레벨 디자인과 상호작용하며 마치 2D미소녀에 의해 촉발된 것처럼 일시적으로 위장된다.

 

이수경의 인물 드로잉이 <던전(Dungeon)>이나 미소녀라는 범주로부터 벗어났을 때 남는 것은, 혹은 그것의 본체는 취향이 부재하므로 거듭 재사용할 수 있는 분신이다. <F/W 16>의 한편에 전시된 드로잉북(혹은 카탈로그)에서 그들은 이수경의 덩어리 조각들 일부를 신상품으로 걸치거나 휴대한 채 다소 무미건조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복붙이 가능한 인물은 일부분 미소녀 데이터의 작동 방식을 공유하지만, 그들은 단지 자신의 프로필 정보를 완전히 소거함으로써 획득한 자율성을 통해 그렇게 한다. 얄팍한 분신들은 현실에서 결코 생산/유통될 수 없는 신상품을 소화하기 위해 자율연상(복붙)되며, 실제로 남성-노인들은 가상의 카탈로그 속 인물들이 열거된 방식과 유사하게 열화된다. 순전히 인상 차원에서 수집 저장된 옷차림과 포즈는 남성-노인의 텍스처만을 드러낼 뿐, 특정 인물의 현존성은 몰가치해지는 것이다.

 

애초에 이수경이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드로잉의 과정을 통해 그것을 희석시키거나, 얄팍하게 만들거나, 자기 변주에 동원하기 위한 편의적인 대상으로 열화시킴으로써 성립한다. 반지하에서 진행했던 <Body Parts>와 같은 연작은 그러한 징후를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F/W 16>의 덩어리들과 엇비슷한 외형을 띈 유사 신체 조각들은 작가에 의해 드로잉 연상된 인물들을 부분으로 해체한 뒤 각각을 펠트와 천으로 기워내 질감을 부여한 결과다. 이때 각각의 신체 부분들의 합이 암시하는 것은 구체화된 인물이 아니라 인물의 형상을 띈 무엇이다. ‘무엇은 구상 단계에서 팰트와 천으로 상징되는 현실에서의 텍스처와 부합하게끔 인물 내부에서 과장되게 변형되며, 그러는 와중에 신체의 윤곽은 드로잉의 무작위한 필치와 연동된다. 이로써 누적되는 출처 불명의 형상들은 텍스처 이전의, 혹은 텍스처를 예비한 미완의 재료들이다.


이수경, <Body Parts>, mixed media, 공간 반지하, 2013 (http://www.leesskk.com/)

 

2) 데이터 껍데기

 

<F/W 16>에서 그것들은 일종의 데이터로서 호명된다. 그러나 이때의 데이터는 체계적인 방식에 의해 연산 처리된 결과가 아니라 이수경 개인에 의해 재구성된 기억 형상들에 가깝다. 남성-노인을 향한 즉각적인 혐오의 감정적 차원은 오로지 그들의 외양만을 스킨으로 취함으로써 획득하게 되는 무미한 시선에 의해 일정 부분 해소된다. 남성-노인은 단순히 혐오를 유발하는 단일 개체로 그치지 않는다. 전현대적인 가치관을 공유하는 구세대의 인물들은 지나치게 헐거운 옷의 품이나 낡은 재질, ‘믹스 매치로부터 어긋난 색의 패턴 등의 시각적 요소들로 은연중에 자신들의 집단적인 시대착오성을 재현한다. 문제는 앞선 혐오가 순전히 외양 차원으로 분류됐을 때, 달리 말해 외양 너머에서 작동하는 가부장의 습성이나 수동적인 무례함 등이 배제됐을 때 스킨으로 저장된 의사 데이터들은 어떤 정보값을 지니는가 하는 것이다.

 

남성-노인들은 마치 한국인의 정서를 고스란히 백업한 채 도심을 활보하는 K-껍데기의 전형처럼 보인다. 혹은 그런 식으로 범주화된 껍데기들이 각각의 인물과 사물의 형상으로 외화한 채 서로 교차하거나 대립하는 풍경이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를 구성한다. “혐오스러운 서울의 풍경이란 개별적인 껍데기들이 자신에게 백업된 데이터를 실제로 유출함으로써 드러나기도 하지만, 껍데기 자체가 일정 부분 데이터의 반영인 이상 그것들이 놓여있는 장면 자체이기도 하다. 결국 이수경이 편집하고자 하는 대상은 후자에 가깝다. 남성-노인으로부터 비롯한 형상들은 서울이라는 껍데기를 지시하며 그 일부로써 구실한다. <F/W 16>의 유사 조각들이 지닌 기묘한 텍스처는 이처럼 오로지 반영으로써만 존재하는 스킨이 조각적인 부피감을 지님으로써 암시하는 내부가 사실상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실제 사용자인 인물은 소거됐고 패브릭은 단지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만 스스로를 부풀리거나 서로 접합된다. 그러나 <Body Parts> 연작과 달리 일련의 작업들은 어떻게든 현실과 매개된 채 텍스처 이전/이후라는 조립라인을 수행한다. 이수경이 인물의 텍스처를 다루는 방식은 3D모델링의 좌표 상에 임포트된 현실의 대상이 개별적인 레이어나 폴리곤으로 분화한 채 재구성되는 방식과 유사하다. 다만 <F/W 16>에서는 앞선 역학이 공간 차원으로 확장/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의 객체로써 집적된다. 서울과 유비된 남성-노인은 껍데기 조형물로 재구성되어 가상의 편집숍으로 연출된 전시 공간 내에 열거된다. 혐오의 대상은 자기조형적인 덩어리로써의 이질감을 고스란히 노출하며 관객이 그것을 소비/소유하게끔 추동하는 것이다. 더불어 절단된 페브릭의 면들이 (3D모델링의 관성에 따르되) 수공예적으로 기워짐으로써 발생하는 촉각적 시각성은 혐오에 대한 소유 감각을 보다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F/W 16> 전시 전경

 

3) 혐오 캐라

 

결국 중요한 것은 텍스처에 의해 유발되는 의사 사물의 현존성이다. 그것은 오로지 껍데기로써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내적인 부재 자체를 동력삼아 물리적인 몸체를 구성해낸다. 앞선 과정을 통해 의도적으로 소외되는 것은 실제 현실에서 원본의 옷차림과 행색을 한 채 도심을 활보하고 있는 남성-노인이다. 거듭 기억 형상이라는 전제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F/W 16>이 일본 서브컬처 내의 캐릭터 재생산 방식을 은연중에 체득한 채 현실에서의 인물을 거듭 열화하기 때문이다. 돈선필은 이때의 캐릭터를 일본식 조어인 캐라라고 호명하며 일본의 캐라는 캐릭터로서 유지해야 할 특질이나 개성, 속성을 얼굴이 아닌, 신체의 주변부로 확장한다. 그리고 이 확장은 개념적인 차원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 시각적으로 사물화되는 특징이 있다.”라고 부연한다.3) 마찬가지로 이수경은 특정 인물이 현실에서 연원하건, 텍스처 이전의 재료들로 구성되건 인물 자체보다는 그것에 부속된 사물들의 형태를 크롭한 뒤 변주한다. 주지하듯 이 와중에 소외된 인물은 어렴풋한 형상이거나 무엇으로 잔존한다.

 

앞선 과정에서 사물화에 동원되는 재료들은 순전히 데이터로 위장한 기억들이다. 기억 형상은 일본 서브컬처를 나름의 방식으로 여과한 작가의 ()취향 혹은 그로부터 파생한 흐릿한 미소녀 이미지로부터 암시되기도 하지만, 보다 전면에 부각되는 것은 서울의 외양을 기억과 등가인 인상 차원에서 수렴한 뒤 덩어리로 조형해내는 방식에 있다. 이미 데이터 기억으로 처리된 남성-노인은 이수경의 드로잉 연상에서처럼 별다른 조형의 목적성을 염두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자율연상된다. 그에 대한 결과값인 일련의 덩어리들은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영역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껍데기가 담보하고 있는 현실의 반영성에 의해 마침내 구체적인 사물이 된다. 이로써 작가는 자신이 상정한 혐오라는 감정을 물리적인 실체로써 재확인한다. 실상 혐오는 껍데기 이면의 오작동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거나 그에 대한 포기를 상정하는 순간 발생하며, 껍데기로 조형된 덩어리는 혐오의 발생 과정 자체를 전유한 오브제인 셈이다.

 

서울에 대한 편집의 가능성은 그 안의 객체들을 기억이라는 지극히 유동적인 좌표 상에 소환한다. 그러나 이때의 기억은 구체적 사건이 아니라 대상의 외양만으로 재편집된 채 모든 종류의 친밀한 관계를 차단하는 식으로 구성된다. 더불어 소거됐지만 여전히 의복의 품으로 암시되는 인물의 형상은 패브릭의 자기조형성에 따라 접히거나 왜곡된다. 이수경의 관점에서 서울은 데이터로 포화된 세계라기보다 오로지 껍데기들의 나열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직관적으로 포섭할 수 있는 대상이다. 그와 동시에 서울의 부산물들은 기꺼이 포섭하기엔 너무도 불유쾌한 방식으로 일상을 침범한다. 어찌됐든 일상의 영역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면 그것을 묘사하는 대신 개개의 요소들을 꿰매버림으로써 가 불완전하게나마 통제할 수 있는 덩어리로 귀결시킨다.

 

이로써 파생된 결과물들을 다시금 상품의 형태로 진열함으로써, 이수경은 혐오스런 풍경을 오로지 텍스처 차원에서 감각하고 소비해버리는 새로운 주체 모델을 망상해낸다. 그들은 상품과 별개의 영역에서조차 서로를 텍스처로 인식하는 데 그친다. 달리 말해 대상의 특정성은 스킨 너머의 불가해한 영역이 부재하거나 그것을 노출하지 않은 채 단지 외연만이 인위적으로 부풀어있는 듯한 상태로 전환된다. 실제 대상은 없되, 대상의 오작동을 시각적으로 유추할 수는 있다. 외연의 속성들로 이루어진 데이터베이스는 앞선 부재를 형성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생산/유통되고자 한다. 이처럼 덩어리에 재차 백업된 서울은 모두를 껍데기로 유도한다. 이곳에서 혐오는 그저 텍스처의 이질감으로 번역된 채 부유하고 있을 뿐이다.

  

1) <F/W 16> 전시 서문에서 발췌

2) <던전(Dungeon)>에서 암시되는 오타쿠 취향은 사실 공간 내부를 일종의 이미지 통로로써 압축 상연하기 위해 참조/발췌된 웹 데이터베이스의 일부에 가깝다. 다만 일부를 구획하기 위한 선택의 과정에서 오타쿠 자의식이 일정 부분 반영됐고, 전시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의사 오타쿠 장식물들은 그로부터 연원한다.

3) 돈선필, <피규어 TEXT>, 유어마인드, 2016, 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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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ipdanoc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