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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윤리를 나누는 이분법은 누구에게 유리한가?

 

홍양무현(맥주)

 

예술과 윤리를 나누는 이분법은 누구에게 유리한가

 

20021) 11월 아라키 노부요시의 전시 [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2)가 열렸고, 20032월에 [Anti Araki ]3)이 열렸다. 20084월 김홍석의 전시 [밖으로 들어가기]4)의 퍼포먼스 및 설치 작업 <Post 1945>5)가 공개되었고, 그에 따른 안티퍼포먼스6)가 같은 해 5월에 진행되었다. 안티아라키전의 주체는 영 페미니스트 미술가 연대7), 안티퍼포먼스의 주체들은 민주성노동자연대, 성노동네트워크, 여성주의 지향 블로거 모임,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 팀, 인터넷 공지를 보고 온 개인 참가자등 다양했다. 영 페미니스트 미술가 연대는 [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예술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며 비판했고, 안티퍼포먼스 참가자들은 <Post 1945>가 성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영 페미니스트 미술가 연대는 일민미술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방식과 대항하는 전시를 갖는 다양한 방식을 취했다. 안티퍼포먼스의 퍼포머들은 김홍석을 찾는 이에게 120원을 주겠다는 피켓을 들고, 성명서를 낭독한 후 내가 창녀다라고 외치며 전시장의 외부 현관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갤러리 측으로부터 30여분간 입장이 저지되었다.

이러한 행동들이 미술이냐 활동이냐를 나누어보는 것보다는, 행동의 수용자-기대 관객-가 누구인지 생각하고, 수용자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다가갔는지의 방법론에 따라 판단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전자는 여성 이미지를 대상화한아라키와 전시에 대해 무비판적인 언론과 미학적 논의 외의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8) 미술계에 대해서 날을 세웠으며, 후자는 김홍석 작가와 제대로 된 비평 하나 내놓지 않는9) 미술계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흥미롭게도 두 사례 모두 현실과 괴리된 미술계의 모습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아라키 사진의 여성 대상화, 포르노적 시선을 지적한 전자의 문제의식에 대응하듯 2017D.S.O.10)는 불법촬영 영상 유포와 성폭행 모의 등의 플랫폼으로 기능했던 웹페이지 소라넷 폐지에 크게 기여했다. 2018년에는 아라키 노부요시의 모델이었던 카오리로부터 합의없는 누드 사진 촬영과 출판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터져나왔다. Anti Araki 전 기획팀의 문제의식과 한국의 포르노 산업 및 유통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11로 병치시키는 것은 섣부른 일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여성 신체 이미지를 다루는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라는 데 동의한다면 여성 피사체를 대할 때 발화자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 작품 내에서의 거리감을 어떻게 확보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후자도 마찬가지인데, 성노동11)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성착취’, ‘성매매’, ‘성노동등 여러 용어가 쓰이고 있으며, 이에 따른 여러 가지 견해들이 존재한다.12)

 

사실, ‘윤리를 다루며 문제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상찬받는 작업물들의 면면들을 살펴볼 때, 대부분의 작업물들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발화자의 위치와 연관지어 생각해보았을 때 아쉽게도 그다지 파격적이지 않다.

특히 여성의 목소리가 삭제된, 여성 신체 이미지에 대한 작업물들은 세계관 자체의 구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작업물들을 예술로서 호명하고, 그에 더해 윤리에 저항하는 예술이라는 구도를 만들어 호의적으로 해석하고 비평을 풀어놓는 저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누구에게 이로운가?

 

'문제적' 의견은 어디서부터 '문제'와 구분되는가?

 

20185월 합정지구에서 미러의미러의미러13)전시가 열렸다. 이 전시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논의해볼 여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권용만과 한솔의 영상들에 대해 다루기로 한다.

 

권용만의 영상물 <Mondo Corea:TakeFIVE>5분간 웃어볼 것을 제시하는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두고, 금기시되는 여러가지 일들- 자위, 유아의 욕, 십자가나 성경책의 훼손 등-이 저질러지는 현장들을 담아낸 영상들을 병렬로 세워놓는다. 이 영상물이 만약 흥미로울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영상의 내용이 금기와 전복에 대해 언급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늘날 이미지의 촬영과 편집에 대한 접근가능성이 낮아졌고, 그에 따라 금기에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내용들이 웹-공공- 공간에 공유를 허락하는 방식으로 다수 제시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영상을 보면서 크레딧이 꽤 길 것을 각오했고, 그 뒤에 숨은 개인의 욕망들을 맞대면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권용만은 출처를 밝히고 인용 표기를 해야 할 엔딩크레딧에 모든 영상과 텍스트의 출처는 유튜브14)라고 제시했다. 이 영상이 개개인의 금기에 대한 도전 의지를 보여주며, 사회적 합의의 공고함에 균열을 내려는 자가 바로 당신의 옆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상정하기를 제안한다고 여기기 위해서, 출처 제시와 인용 표기는 구체적으로 드러났어야 한다.

또한 크레딧 말미에 매어달린, 소스로 사용된 영상들을 동의나 추천의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음이라는 변명은 부적절하다. 시각이미지 작업자라면 자신이 내놓은 이미지가 어떤 정보값으로 다가갈지에 대해서는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열어 놓아야 한다. 작가 자신의 의도를 설명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작업노트 등 작품과는 거리를 둔 방식으로 관객에게 제공될 필요가 있다. 작가의 의도를 굳이 크레딧에 명시하는 것은 군더더기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한솔의 <메루메루빔>15)으로 넘어가기로 하자. 청소년기 때부터 성노동을 해왔음을 암시하는 메루메루의 글을 모사하는 듯한 이 영상은 내가 자살하면은 성노동 혐오자들 때문일까 아님 착취당해서일까라는 불가능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이 불가능한 이유는 성노동 혐오자들착취는 같은 비교선상에 올라올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비슷한 무게로 뒤섞어버리는 것은 개인의 인생사 속에서 한시적으로, 그리고 느낌적으로가능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한솔은 작가가 응답해야 할 지점을 메루메루라는 당사자성을 지닌 개인에게 넘겨버림으로서 책임을 회피한다.

한솔의 태도는 비도 오고 그래서16)의 가사를 개사하여 사용했다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원본의 가사 중 인상적인 것은 비도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던 거지, 별 의미 없지’,‘어차피 이 밤이 다 지나가면은 별 수도 없이, 난 또 한 동안은 널 잊고 살테니까, 내 가슴 속에만 품고 살아갈 테니까등이다. 전시장에 게시된 한솔의 작업 설명이 말하는 대로 메루메루를 추모17)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자기연민의 태도와 개념상의 무게균형이 맞지 않는 균열 지점을 메루메루에게 넘기며 회피하는 태도의 한 쌍은 그 의도를 배신하고 있다.18)

 

권용만과 한솔의 영상물들을 작품으로서 화이트큐브에 내어걸었다는 것은, 기획자가 생각한 대로, ‘윤리와 도덕, 사회적 합의에 저항하는 예술이라는 이분법의 세계관이 내놓은 처참한 결과물이다. 하나의 윤리를 상정하고, 그 반대값으로서의 예술을 보여주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윤리라는 범주를 좁게 그어놓는 것이 누구인지, 그 범주화로 인해 이익을 보는 자가 누구인지는 명확하다. 안타깝게도, 기존의 윤리로부터 한시적으로나마 보호받을 수 있는 자들이 윤리에 대해 말할 기회를 얻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여성주의 감각이 없는 자가 여성 신체 이미지를 다룰 때, 그는 당사자성을 대상이 되는 여성에게 맡기면서 비판 지점도 함께 떠넘긴다. 이러한 안일함은 쉽게 지적되지 않는다.

창녀일반인(-창녀)’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대상화를 시도했던 김홍석의 <Post 1945>, “내가 창녀다라는 외침으로 그러한 구분에 문제를 제기했던 안티퍼포먼스의 퍼포머들을 보자. 화자 김홍석은 일반인의 위치에 단단히 자신을 매어놓으며, 따라서 <Post 1945>는 초기 설정부터 화자에게 유리하게 조작된 그의 자그마한 세계다. 조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설정한 비겁함은 윤리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미명 아래 감춰진다. 김홍석의 폭 좁은 사회적 범주의 시각화에 대해서 오히려 퍼포머들은 범주화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응했으며, 좁은 질문에 넓은 답으로 다가간 셈이다.

김홍석과 퍼포머들의 문답이 보여주듯이, 개인의 표현이 의견으로서 공적 토론의 장에 올라갈 때에는 발화자와 청자가 공유하는 기반이 필요하고, 그 기반은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물화될 때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작품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의 이해- 하나의 이미지가 공적 공간에서 전시될 때에는 공론화에 동의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거친다는 이해를 기본으로, 예술이라는 방법론에 대한 이해와 예술의 맥락을 제공한 사회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우리는 윤리의 개념을 계속해서 새롭게 갱신해나갈 필요가 있다. 사회에서 다뤄지는 여러 화두들에 직면할 때, 여성주의 활동은 그 이름대로 적극적으로 움직여 나간다. 예술을 통해 드러나는 의견들 또한 움직임의 일부가 될 수 있고 새로운 화두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이 윤리에 저항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을 둘러싼 사회 문제들을 다룬다고 할 때, 많은 경우 그 것들은 문제의 핵심을 빗겨나가곤 한다. 예술로서 나타난 의견과 그 방식이 적절했는지 부적절했는지, 혹은 제시한 화두가 지금 이 공간에 필요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우리는 토론할 수 있다.

 

또다시, 우리에게는 새로운 윤리와 새로운 예술이 필요하다.

 

*이 글을 쓰는데 벗 혜원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그에 감사한다. 글 내부의 실패 지점에 대한 책임은 나의 몫이다.  


1) 2002년은 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이 벌어진 해이다. 1992년에 벌어진 (고 윤금이 씨를 대상으로 한) 미군 성범죄 사건으로부터 10년이 지난 해이기도 하다. 고 윤금이 씨의 주검 사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행태에 대해, 미군의 범죄에 맞서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고인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는 여성 신체 이미지의 사용에 대한 또 하나의 논의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 http://fc.womenlink.or.kr 에서 윤금이씨 주검사진 게재에 반대한다는 것은라는 이름으로 루나(여성노동센터 회원) 의 글을 검색해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윤금이씨 주검사진 게재에 반대하는 여성주의자 네트워크'는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직접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윤금이씨 주검사진 게재에 반대하는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이 반미운동이라는 전체 흐름을 균열시키고 '큰 틀'을 파악하지 못하는 행동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공동 적은 미국인데 이렇게 '우리'끼리 싸우면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러나 언제부터 그 '우리'에 여성이 포함되었는가.”

2) [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 일민미술관. 2002.11.15.~2003.02.23. 관련기사: “섬뜩파격천재 예술성 엿보기”, 주간동아. 전원경 기자. 2002.11.14. http://weekly.donga.com/

3) [Anti Araki ]. 카페 시월. 2003.02.20.~2003.03.02. www.neolook.com/ > 검색어“Anti Araki“

관련기사: “음란물이냐 폭력물이냐, '포르노 정체' 대논쟁”. 한겨레. 강김아리 기자. 2003.02.23.

4) [밖으로 들어가기 In through the outdoor]. 국제갤러리, 2008.04.17.~2008.05.19.

www.kukjegallery.com > EXHIBITIONS > 2008.

5) "혹시 여기 적힌 창녀분?"... "내가 그렇게 보이냐?". 오마이뉴스. 2008.05.02. 김홍주선 기자.

"지금 이곳에는 의도적으로 창녀가 초대되었습니다. 그녀는 오늘 있는 미술 전시 개막행사에 3시간 참석하는 조건으로 한화 60만원을 작가로부터 지급받습니다. 이 순간 여러분 사이를 유유히 걸어 다니며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이 창녀가 누구인지 찾아낸 분은 작가로부터 그녀를 찾은 대가로 120만원을 지급받게 됩니다. 창녀를 찾아봅시다." 퍼포먼스 이후 120만원이 담겨 있었던 빈 금고와 함께 김홍석이 전시장에 게시한 텍스트.

6) "'창녀찾기' 작가 찾으면 120원 드립니다". 오마이뉴스. 2008.05.19. 김홍주선 기자.

7) “미대생들 안티아라키전만들다”. 한겨레. 강김아리 기자. 2003.02.23.

8) 2)와 같은 출처.

9) 5)와 같은 출처.

10) ‘디지털 성폭력 아웃(Digital Sexual Crime Out·D.S.O) 프로젝트’.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 ‘여성 리벤지 포르노 아웃(Revenge Porn Out·RPO)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거쳤다. 관련 기사: “국내 최대 불법 음란사이트 소라넷폐지 뒤엔 ‘DSO’가 있었다“, 여성신문, 2017.3.7. 이하나 기자.

11) ‘성매매성노동이라는 두 가지 용어에 대한 논란이 존재한다. 성매매는 반어적으로 성구매자에 대한 논의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며, 성노동은 노동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육체를 활용한 성적 서비스가 감정노동과 엮여 제공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성노동을 사용하였다.

12) ‘우리에게 판타지는 필요없다-한국의 성노동 연구자들에 대한 비판을 참고해보면 좋겠다. 반성매매인권운동 이룸의 홈페이지 e-loom.org에서 읽을 수 있다. 필자 박혜정의 최근 글은 웹진 집단오찬jipdanocahn.com에서 읽을 수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 지우기, 예술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나’.

13) [미러의미러의미러], 합정지구. 기획 이진실. 참여 권용만, 업체eobchae류성실, 이자혜, 한솔.

2018.5.25.~6.24. http://hapjungjigu.com/mirrors/에서 전시서문을 읽어볼 수 있다.

14) <Mondo Corea:TakeFIVE> 엔딩크레딧의 정확한 내용은 이러하다. [사용된 음악. Hector Berlloz-Symphonia Fantastique. 영웅본색2 OST- 여기는 우리가 살 곳이 아냐. 이강영- 19분간 모든 걸 내려놓아요. 사용된 영상. 요양박사 케어닥의 5분 웃음치료 요법 외 다수. 모든 영상과 텍스트의 출처는 유튜브입니다. 제작자는 본 영상에 등장하는 그 어떤 영상이나 메시지도 동의나 추천의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권용만의 다른 영상 <페미네이터:재기의 날>은 엔딩 크레딧이 없다.

15) 한솔, <메루메루빔>, 단채널 영상, 332, 2018. ‘메루메루빔메루메루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트위터 계정주@candle_daze의 죽음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고인을 추모한다며 돌았던 해쉬태그이기도 하다. <메루메루빔>메루메루의 기록들에 디테일한 부분들까지도 많은 빚을 지고 있는데, ‘메루메루의 블로그 글에서 언급되었던, 돈을 벌어 산 물건이 텀블러와 외장하드 등이라는 세세한 부분의 언급까지 같다.

16) 헤이즈 (Heize) - 비도 오고 그래서 (You, Clouds, Rain). 20176월 발표되었다.

17) 한솔의 작업 설명 전문은 이러하다. ‘2018.4.2. #메루메루빔. 나는 메루님의 얼굴을 영정사진을 통해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죽고 나서야 쓸데없이 상황에 경도되어 그녀의 블로그 글과 트위터를 뒤적여 본다. 이 모든 일들이 이기적일 수 있음을 직감한다. 그러나 나는 죽은 사람의 이기심과 맞먹는 살아있는 사람의 이기심을 발휘해 그녀를 슬픔의 대상으로 삼아보려 한다. 메루메루의 명복을 빔.’

18) 사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오히려 한솔의 [obstacle race] 등의 다른 작품이 당사자성에 대해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한솔의 다른 작품을 다른 시점의 전시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Posted by jipdanoc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