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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화된 공간에서 장식 아닌 것들을 망상하는 방법

 

권시우


*본 글은 '산수문화'에서 개막한 최하늘 개인전 <카페 콘탁트호프 Cafe Kontakthof>의 전시 서문입니다.


(http://sansumunhwa.com/choi-haneyl/)  


1) 사용자 주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을 인식/인지하는데, 그 중 하나는 무엇이든 캡쳐하는 데 익숙한 사용자의 에 의지하는 것이다.

 

2) 당신은 특정한 공간을 경험하는 와중에,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1인칭의 시야 속으로 수렴하는 공간을 바라보는 와중에 불시에 어떤 이미지를 캡쳐한다. 캡쳐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순전히 조건반사적으로 이루어졌을 수도 있고, 필기하는 대신 머릿속의 데이터 센터에 이미지를 저장해뒀을 수도, 말 그대로 인스타 각이었을 수도, 기타 등등, 의도는 종잡을 수 없다. 그 결과 주어진 이미지들은, 어떤 일관된 서사를 구성하기 위한 재료로 삼거나 파노라마로 펼쳐놓기에는, 각각의 시점의 레벨이나 해상도 등이 지나치게 상이하다.

 

3) 물론 당신이 원한다면, 몇 가지 이미지들을 취사선택해 파노라마와 유사한 형태로 나열함으로써 불균질한 시각적인 얼개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굳이 일련의 이미지들을 특정한 규칙을 준수해가며 억지로 조합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의 과 그것이 구사하는 캡쳐술에 기반해 공간을 대하는 순간, 공간은 건축적으로 구조화된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라, 이미지로 포착되기를 예비하고 있는, 혹은 캡쳐의 순간을 위해 연출된 일종의 무대로 환원된다는 사실이다. 무대는 단지 관객이 수용할 수 있을만한 적절한 구도와 배치, 분위기 등을 조성하는 데 주력할 뿐, 그 자체로 합리적인 공간을 지향하지 않는다.

 

4) 어떤 공간은 그럴듯한무대가 되기를 자처한다. 그 과정에서 동원되는 인테리어 양식, 샘플 이미지, 가구와 소품을 비롯한 각종 오브제 등은 대개 원본과 유사한 가짜이자 취향의 데이터베이스로부터 무작위로 발췌한 장식들에 불과하다. 설사 원본을 재료로 삼는다하더라도, 그것은 사용자의 에 의해 포착될 장식적인 표면만을 드러낸 채 공간상에 수렴될 뿐, 명확한 실체를 지닌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애초에 무대화된 공간은 관객 혹은 사용자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거나, 통상의 무대처럼 특정한 내러티브를 전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식들을 공간상에서 별다른 맥락 없이 취합하는 것만으로, 무대화된 공간은 완성된다.

 

5) 최하늘은 그에 대한 한 가지 사례로서 카페를 선택하고, 기존의 전시장에 카페라는 공간을 구성할 법한 그럴듯한장식들을 동원해 노골적으로 카페와 유사한 무대를 연출한다. 달리 말해 그곳은 무대화된 공간을 무대 삼기 위해, 무대화된 공간의 프로세스를 적용해 만든 가설무대인 셈이다. 그러므로 앞서 동원한 장식들, 혹은 그것들이 취합된 공간 자체는 굳이 장식을 연기함으로써 자신의 장식적인 표면을 과시한다. 이로써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혹은 존재할 필요가 없었던 내러티브의 전조가 발생한다. 장식들이 수행하는 (장식이 되기 위한) 기묘한 상황극은, 그렇다면 이후에 무대에 개입할 작업들은 그에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지를 묻는다. 작업은 결국 장식으로 수렴돼 동어반복의 연기를 할 것인가, 아니면 장식이 아닌 채로 무대 위에 등장해 새로운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마침내 독자적인 대상이 될 것인가?

 

6)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최하늘과 문주혜, 두 작가는 동일한 무대를 공유하되 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활용함으로써 전시 혹은 유사 연극의 내러티브를 한층 복잡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문주혜가 연출된 상황에 몰입해 카페(와 유사한 무대)를 고스란히 전시장으로 삼아 자신의 회화를 배치한 반면, 최하늘은 주어진 무대가 무대화된 공간의 표본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채, 자신의 조각을 통해 일련의 장식들이 수행하는 상황극의 국면을 전환시키려 한다.

 

7) 최하늘의 입체병풍 연작은 어떤 대상을 잘라낸 형태를 병풍의 틀 안에 박제하거나, 절삭된 오브제 자체를 병풍의 일부로 제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전개된다. 자르기 이전의 대상은 대개 망상 차원에서 랜더링된 불균질한 입체의 형상들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잘라낸 결과 드러난 단면을 순전히 작가의 임의에 따라 조형해낼 수 있다. 작가의 이전 개인전인 <No Shadow Saber>가 검의 회전베기 동작인 물리네moulinet를 나름대로 전유해 대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잘라내며 조각적으로 도해했다면, 이번 입체병풍 연작에서 시도한 자르기는 검술이라기보다 단순한 절삭에 가까우며, 이는 대상의 단면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에 가깝다.

 

8) 어떤 입체병풍은 병풍의 틀을 고수한 채 제작됐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절삭된 오브제를 포함한 일련의 모형들을 장방형으로 늘어놓아 병풍과 유사한 구도를 형성한다. 어찌됐든 개별 작업들은 (평면 회화의 형식이 아닌, 실내에 배치되기 위한 물건으로서의) 병풍의 역할을 자임하며 무대에 개입하지만, 그것들은 애초에 카페와는 무관하게 조형된 생소한 대상이므로 무대화된 공간의 인테리어의 일부로 수렴하지 못한다. 오히려 입체병풍을 통해 제시된 대상의 단면들은 무대에서 자신의 장식적인 표면을 과시하는 장식들이 사실 잘라낼 수 있는 몸통을 가지고 있는 입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암시하며, 장식들이 수행하는 상황극과 대립한다.

 

9) 최하늘은 대상을 실제로 잘라내며 시범을 보이는 대신, 자르기라는 행위를 통해 연극적인 상황을 발생시키고 이를 병풍의 구도로 제시한다. 작가가 재료로 삼는 불균질한 입체의 형상은 망상으로부터 비롯하므로 얼마든지 다양한 단면들을 재생산할 수 있는데, 작업의 과정에서 단면은 대개 (작가의 임의에 따라) 이질적인 형태로 조형된다. 무엇보다 대상의 단면은 캡쳐만을 반복하는 사용자의 이 인식할 수 없는 불가해한 이미지로서, 그것은 대상의 외피와는 무관하게, 혹은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애초에 자신의 단면을 노출하고 있는 대상들은 합리적으로 구성된 오브제가 아니다. 작가는 그것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설치함으로써 무대화된 공간에서 포착할 수 없는 장면들을 연출하는데, 일련의 장면들은 병풍으로서 무대상에 산개하며, 장식들에 의해 조성된 내러티브를 구획한다.


10) 그 결과 무대에서 상연되는 장식들의 상황극은 불시에 등장하는 입체병풍에 의해 차단당하기를 반복하며 일관된 흐름을 형성하지 못한다. 당신은 여전히 사용자의 에 의지해서 공간을 경험하지만, 이곳에 동원된 장식들은 그저 장식을 연기하고 있을 뿐, 어떤 내러티브의 구간에 속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달리한다. 이를테면 장식은 당신이 예측할 수 없는 단면의 형태들이 잠재돼있는 입체의 형상일 수도 있다. 달리 말해 당신은 장식의 단면을 상상함으로써, 그것을 편의에 따라 잘라낼 수 있는 대상으로 환원할 수 있다. 연극이 막을 내린 이후,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될 공간의 형식을 결정짓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다.

Posted by jipdanoc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