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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01. 관객 A와 박샤라폽 시계


권시우 a.k.a 흔들리는 죠



마침내 A는 박샤라폽 시계의 19번째 에디션을 구입했다. 그러나 마침내, 라며 다소 호들갑스럽게 첫 문장의 운을 띄우기에 시계의 구입은 사실 너무도 우연찮게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의 정황을 조금 앞당겨 서술해보자. 세종문화회관 야외에서 굿-즈의 흔적을 좇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광화문 역 출구의 지척에서부터 컨테이너 형태의 가설 매표소가 건너다보였고 그 와중에 굿-즈의 에드벌룬은 동공을 굴리며 (아마도 관객들로 추측되는) 인파에 합류하기를 망설이는 A를 안쓰런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티켓팅 전의 A가 섰던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계들이 진열된 좌대 사이의 거리. 그것은 단번에 잇거나 측정될 수 있는 미터라기보다, A가 구사했던 그날 치의 다소 부산했던 동선들의 다발에 가깝다.


다발을 한 가닥씩 명료하게 추리기 전에, 혹은 그러한 무의미한 추적을 일찍이 포기하며 단번에 A가 최초로 박샤라폽 좌대를 맞닥뜨린 순간을 상기해보자. A는 일전에 일민미술관에서 개막한 뉴 스킨 전을 관람했던 경험이 있다. 1층의 다소 어두운 채도의 전시장에서 목재로 제작된 객석1)에 앉아 <바벨>을 감상했더랬다. <바벨>은 21분 남짓의 영상이었고 박샤라폽 좌대 앞에 멈춰 선 채 불현듯 A의 뇌리를 스친 이미지는 21분 동안 영사된 내용의 파노라마가 아니라, 당시 영상 속 지하철 스크린 도어의 표면을 서슴없이 투과하던 3d로 모델링된 유사 마네킹들이었다. A는 한번 ‘그것’들을 제 머릿속에 무작위로 줄 세워보았다.


1) 전시를 관람한 이후, 뒤늦게 그 객석이 김동희 작가2)가 제작한 나무 구조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A는 자신이 엉겁결에 작품 위에 걸터앉았다는 생각에 괜스레 므흣해졌다.

2) 박샤라폽 시계를 찬 채 주변을 기웃거리다 발견한 김동희 작가의 좌대에서는 작업복의 패치를 판매하고 있었다. A는 제 머릿속에 연상된 ‘구조물’과 대차대조하며 “이건 정말 작가로부터의 ‘굿즈’가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어찌됐건 일전에 A가 착석했던 순간은 누군가에 의해 조형된 것이 틀림없었던 것.


하여튼 ‘그것’들은 불길해서 멋지지 않았던가. <바벨>의 내레이터가 읊조리던 내용의 세목들은 역시나 21분의 통째와 마찬가지로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당시 청각은 꽤 미묘하게 “망해가는 세계”에 반응했다. 마치 90년대생인 A로써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99년도의 세기말을 A의 유년 저편으로부터 무작위로 연성하려는 듯 주문을 읊고 이를 BGM 삼아, 그간 망각돼서 구체인형처럼 뻣뻣해진 인물들이 현실 공간과 마구 겹쳐지는 듯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A에게 <바벨>은 흡사 강령술의 현장이었다. ‘그것’들을 막상 (가상의) 파노라마에서 끄집어내 (A의 머릿속 가상의) 진공 상태에 병렬로 죽 늘어놓고 보니 각자에게 도무지 개별적인 인상이랄 게 없어서 더 그럴싸한 ‘분위기’가 났다.


그리고 지금 여기, A의 앞에 진열된 박샤라폽 시계들이 있다. 굿-즈가 개막하기 전 SNS를 떠돌던 프리뷰의 내용3)으로 추측컨대, 이 시계 안에는 3D로 모델링된 박샤라폽이라는 인물의 재촬영된 이미지가 삽입되어있다. 도대체 박샤라폽이 누구일까? 얼핏 페이스북 뉴스피드에서 동공으로 스캔한 이름 같기도 하다. 문득 의문이 들었지만, 마침 작가는 좌대를 잠시 비운 상태였고 A는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대리인을 통해 19번째 에디션을 구매했다. 대리인은 시계를 한 장의 프린트와 함께 포장지에 동봉한 채 거슬러주며 이 프린트에 적힌 좌표를 통해 박샤라폽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A는 박샤라폽을 곧바로 다운로드 받는 대신 일단 시계부터 포장지에서 꺼내 착용했다. 정작 시간은 제대로 맞지 않았지만 굳이 표준시에 맞춰 조정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그날 치의 동선을 주워섬기며 계단을 오르던 와중, A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머물던 풍경이 유난히 움푹 팬 것처럼 보였다. 세종문화회관의 예인홀 일대는 마침 지하에 위치해있어 A를 스치는 주변의 인파는 자발적으로 그런 “싱크홀”과 바깥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덕분에 행사장 한편에 염치없이 눌러앉은 한 거지의 남루한 행색은 별다른 이질감 없이 그 자리에 방치됐다.4) A의 소비에 원동력이 된 <바벨>은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조악한 3D의 텍스처 속으로 함몰되며 “실제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에 대한 역상”으로써의 도시-이미지를 가리켰다.5) 그렇다면 현재 굿-즈가 겹쳐짐으로써, 혹은 2015년 10월 14일 발 성황리에 진행됨에 따라 파생된 공간은 무엇의 역상일 수 있을까.


주지하다시피 굿-즈는 작가들의 페어인 동시에 신생공간들 일부가 작품 유통의 경로를 따라 일시적으로 집적된 순간이기도 하다. <바벨>이 구글 맵 상에 납작하게 펼쳐진 표면 중 화자의 사적인 경험과 연루된 일정한 범위를 애써 3D로 복각함으로써 좌절된 형태의 ‘공간’이라면, 굿-즈는 결코 물리적으로 한데 엮일 수 없을 만큼 산개한, 그러므로 지도상에서만 간신히 조감될 수 있는 신생공간의 개별 구간들을 총체적 경험으로써 일순 복각시킨 결과나 다름없다. 후자는 결코 디스플레이 너머에 투사된 3D가 아니기에 섣불리 좌절의 텍스처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굳이 표면상의 흠을 찾자면 각자가 임대로 외화 했을 때보다 눈에 띄게 쪼그라든 시간일 것이다. 어찌됐든 덕분에 우리는 무려 현실에서 굿즈들을 플레이 중이다.


A를 포함한 모두에게, 이는 결국 최초의 피날레가 될까? 하여튼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A는 일단 박샤라폽의 시계를 19번째로 구입하여 그 중 한 귀퉁이를 떼어갔다. 그리고 귀가하면 마침내 자신의 데스크톱에 박샤라폽을 다운로드 받을 것이다. 다시 광화문 역사의 지하층으로 기어 들어가 이번에는 조금 다른 층위의 낙차감을 느끼며, A는 문득 그렇다면 다른 49인은 어떤 식으로 박샤라폽 시계를 소장하게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관련한 소식을 좇기 위해 곧바로 스마트폰을 켰고 마침 지하철이 도착하며 스크린도어를 투과한 빛에 시야가 흐렸다. 그 순간 A의 좌표 또한 명멸한다.


3) http://goods2015.com/artist_24.html

4) http://goods2015.com/artist_13.html

5) 인용된 대목은 고스란히 권시우의 글 <뉴 스킨 : 본뜨고 연결하기>, 납작함과 납작화 (http://jipdanochan.com/6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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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ipdanoc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