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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메이 어택: --캐스트>, 피규어의 피규어

 

권시우 a.k.a 흔들리는 죠


<민메이 어택: --캐스트>에서 전시된 영상의 일부


2d3d, 재차 3d를 현실에서의 오브제로 번역하는 시도가 전제하는 것은 과정상에서 손실되는 본래의 형태다. 앞선 과정에서 2d는 일종의 원본으로써 작용한다. 그것은 납작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점차 물적인 대상으로 구체화되지만, 그로 인한 최종적인 결과물은 ‘2d의 현전이 아니라 오브제의 면면에 다소 왜곡된 방식으로 투영된 2d의 잔해들을 제공할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잔해 혹은 파본들을 가상적 차원에서 오려붙임으로써 2d3d 혹은 2d와 오브제 사이의 등가성을 나름대로 유추해낸다. 이는 일정 부분 피규어가 생산 소비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 2차 창작 차원에서 생산되는 피규어는 대부분 특정 아니메의 등장인물, 이를테면 돈선필 개인전 <민메이 어택: --캐스트>의 한편에서 상연하는 아야나미 레이와 같은 캐릭터를 지시한 채 현실에서의 다양한 모델들을 파생시킨다. 실제로 에반게리온에서 아야나미 레이의 신체 껍데기는 대량 복제된 채 LCL용액이 담긴 쇼윈도에 진열된다. 작중의 껍데기들은 말 그대로 복제되어 형태상으로 균일하지만, 아야나미 레이라는 2d캐릭터를 토대로 조형한 현실에서의 피규어들은 원본을 암시할 뿐 원본 자체는 아닌 불안정한 상태에 그친다.

 

돈선필은 몇 년 전 K에게 아야나미 레이 피규어를 선물 받았다. 이후 상연되는 영상의 내용은 마치 <민메이 어택: --캐스트>의 부록처럼 피규어의 전사前事에 대해 두서없이, 그러나 나름대로 성실하게 읊조린다. 작가 본인이 자처한 화자는 어딘가 엉성하게 조형된 아야나미 레이 피규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해당 모델 품번을 검색 엔진에 기입한 뒤 웹상에서 관련한 정보들을 수집 나열한다. 그것은 가이낙스에서 캐릭터 판권을 구입한 세가SEGA97년도에 제작한 아야나미 레이 피규어 시리즈 중 하나이며, 신세기 에반게리온 TV26화에서 등교하는 레이의 모습을 크롭한 결과다, 기타 등등. 그러나 해당 영상은 특정 장면의 크롭 과정과 이를 재차 피규어로 만들기 위한 모델링 과정을 체계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K로부터의 선물이라는 전제는 피규어가 화자의 일상에 우연하게 불시착한 결과일 뿐임을 암시한다. 더불어 모델 품번을 통해 이루어지는 웹상에서의 역추적은 명확한 도착지를 상정하기보다, 아야나미 레이 피규어의 엉성한 조형 상태가 유발하는 모종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과정에 가깝게 전개된다. 그러나 실제로 불편함은 해소되기보다 또 다른 단서로 주어진다. 피규어 신체의 절단면, 단차, 혹은 관절의 움직임, 도색과 같은 구체적 요소들이 오작동하거나 미완의 상태일 때, 사용자/수집자는 은연중에 그것들이 2d작화에서의 (‘등교 중이라는) 동적인 상태가 일순 단일한 형상으로 굳어버리고 무엇보다 아야나미 레이라는 캐릭터를 현실상에 조형하는 와중에 의도적으로 포기하거나 손실됨으로써 주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달리 말해 피규어 제작은 본질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엉성한 모양새의 보급형 피규어는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방증하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돈선필이 앞선 역학을 (K를 매개로 한) 사적인 얼개 속에 수렴하고자 할 때, 그는 스스로를 피규어라는 대상의 질감을 순전히 인상 차원에서 대하는 다소 무미건조한 위치에 놓으며 오타쿠 스테레오 타입과 일정 부분 거리감을 둔다. 이를테면 웹 서핑을 통해 열거하는 아야나미 레이 피규어의 정보들은 (서브컬쳐) 데이터베이스를 체계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우연찮게 습득한 사물을 통해 이루어진 우연한 결과에 불과하다. 또한 앞선 역추적의 동력은 모에와 같은 흐뭇한 감정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불편함과 같은 위화감에서 비롯한다. 돈선필은 앞선 전제 속에서 피규어에 일순 집적된 데이터 객체들, 이를테면 그가 <피규어TEXT>에서 부연하듯 캐릭터의 특성을 사물화하여 갖가지 장식과 부가적인 신체 요소들로 분별해 저장한 캐라형식의 데이터베이스를 외면한 채 오로지 피규어로서의 표면과 형태만을 취하고자 한다. ‘캐라가 부재한 피규어는 2d의 파본 혹은 껍데기 그 자체다.

 

마찬가지로 <민메이 어택: --캐스트>에서 제시된 피규어 조각들은 특정 캐릭터와 연관된 지시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하츠네 미쿠, 데빌맨,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캐릭터 형상들은 대개 두서없이 쌓인 포장 스티로폼 박스나 골판지의 잔해들, 혹은 마우스, 게임패드와 같은 소도구들 사이에서 본래의 스케일을 유지한 채 놓여있을 뿐, 이는 해당 작품의 레퍼런스를 물리적으로 재현하는데 실패한 기념비 따위가 아니라 단지 앞선 사물들의 군집을 빌어 조각 비슷한 것을 흉내내고 있을 뿐이다. 이때 피규어가 지닌 정보값은 그것이 특정 캐릭터를 표상한다는 사실 외에는 별다른 여지가 없으며 주변의 얽혀있는 잔해들 중에서 이를 보충할 만한 데이터 흔적을 찾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닫힌 링크를 자처한 피규어는 더 이상 내적 요소들로 분해되거나 스스로를 재구성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개별적인 피규어 사물로 환원된 채 한데 쌓이거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에서 린 민메이가 펼친 민메이 어택을 은유하기 위한 무대장치의 일부로써 어떤 가상의 장면을 축소 스케일로 연출하기 위해 기능할 뿐이다. 전자의 경우 피규어를 포함한 잔해들의 몸체는 단일한 색의 아크릴로 도색되어 후자와 엇비슷한 맥락에서 굳이 조각적 장면을 연출해내려 한다. 혹은 피규어와 사물 간의 불완전한 등가성이 별다른 합선을 이루지 못한 채 마감 처리되어 그 자체로 대상화된다. 그 속에서 데이터베이스로서의 지위를 잃은 채 오로지 외연만이 존재하는 텅 빈 피규어들은 수집된 대상으로써 본래의 형태와 스케일을 포기하지 않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각이 되기 위해 일상적 소도구나 파편들을 딛고 오른다. 일련의 피규어 조각은 마치 사물화된 조각적 몸체를 탈환하는 데 실패하는 장면을 포착한 정지화상처럼 보인다.


<민메이 어택--캐스트> 전시 일부, 리캐스트recast된 '민메이 어택'


닫힌 링크는 피규어 신체의 절단면, 단차, 혹은 관절의 움직임, 도색과 같은 구체적 요소들의 총합을 굳어버린 단일 개체로 호명한다. 그러므로 피규어 조각 속 피규어는 본연의 물리적 속성을 유지한다는 대전제 하에 부분적으로 절단되거나 여타의 부품을 추가해 조립할 수는 있지만, 데이터로 환원된 채 가상의 그리드 상에서 유동적으로 재구성할 수 없다. 피규어는 오로지 피규어로서만 배열될 뿐이다. 그것은 여전히 캐릭터를 표상하며 특징적으로 감지되지만, 그와 별개로 연출된 장면의 일부로 기능하는 순간 주변의 소도구들 사이에서 극도로 배율이 낮아지며 2d적인 파본을 굳이 뜯어볼 필요가 없을 만큼 축소된 대상으로 환원된다. 이로써 순전히 인상 차원에서 수렴하고자 했던 피규어 자체의 형태와 질감은 사용자/수집자의 시점으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와중에 데이터와 사물 사이에서 고립된다. 달리 말해 피규어는 데이터로 연역될 수도 일상적인 사물로 온전히 중화될 수도 없는 상태로 몰가치해지는 것이다.

 

앞선 화자가 K로부터 선물 받은 레이 피규어는 즉각적인 불편함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얼핏 이수경의 <F/W 16>에서 주요하게 언급되는 서울 도심 속의 혐오스런 남성-노인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이수경은 돈선필과 달리 남성-노인과 연계된 링크를 자의적으로 열어버림으로써 자신이 그간 인상 차원에서 수집 저장한 그들의 옷차림을 비롯한 외형적인 요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그 중 일부를 꿰매고 기워서 일련의 페브릭 조각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우연히 맞닥뜨린 특정 남성-노인은 불가해한 혐오 덩어리 자체로 응결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의 일부로 수렴되기 위해 스킨 차원에서 편의적으로 도축된다. 결과적으로 본체인 인물 자체는 휘발된 채 그에 부속된 소위 사물의 형상들만이 재조합되어 불균질하되 단일한 조각의 품을 이룬다. 페브릭 조각은 서브컬쳐와 무관하지만 그와 별개로 캐라의 방법론과 흡사하게 인물 자체에 대한 초점을 주변부로 확장하고 이를 혐오에 대한 은유체로 활용한다.1)

 

반면 리캐스트recast된 피규어는 자신의 특징적인 외연을 빌어 어떤 것도 반영하지 못한다. 물성화된 캐릭터 형상은 랜더링과 실제 조형 과정에서 포기하고 손실된 본연의 정보값이 아니라 오로지 지금 점유하고 있는 현실 좌표 상에서만 크롭되고자 한다. 이를 방증하듯 또 다른 영상에서 다중창 형식으로 배열한 클립들의 일부는 원본의 2d캐릭터가 투사된 모니터의 전면에 특정 피규어를 배치하거나 유사한 방식으로 동일 피규어를 모니터 내외에서 대질시키며 피규어의 전사前事를 물리적 인터페이스 속에 가둔다. 달리 말해 (캐라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의) 사물화를 자처한 피규어를 역추적하고자 하는 시도는 모니터에 가로막힌 채 원본과 연계되지 못하거나 표면상의 가상적인 이미지로 어른거리는 자신의 현재 모습만을 재확인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순수한 사물의 관점에서 데이터 반영성을 차단한 이후에도 여전히 현실에서의 피규어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작은 크기 속에 여러 이미지를 응축시켜놓은 집합체.2) 그러므로 결국 일상을 반영하는 사물로써도 거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2d를 피규어로, 피규어를 재차 사물로 리-리캐스트하려는 추동은 고립 그 자체에 있다. 이때 피규어는 이수경이 페브릭에 투영된 스킨들로 해체하고 재구성하고자 했던 바로 그 본래적 형태로 남고자 한다. 돈선필은 고립된 피규어 자체를 자신에게 우연히 주어진/불시착한 (그리고 제작자에 의해 평면상의 캐라가 물질로 구체화됨으로써 이미 완결된) 또 다른 원본으로 삼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변주할 수 있는 여지를 자연스레 포기한다. 이제 피규어는 독립적인 개체다. 그것을 조각으로 귀결시키기 위해선 내적으로 해체-재구성하는 게 아니라 피규어와 무관한 사물들 혹은 피규어와 절단된 피규어 부품들을 한데 배열하는 식으로 특정 장면을 연출해낼 수밖에 없다. 이로써 2d와 달리 실제의 피규어가 전제하고 있는 360도 전방위의 뷰view<민메이 어택: --캐스트>에서 연출된 피규어 조각의 몫으로 이전된다. 그러나 이때 인식할 수 있는 형태와 질감이란 단지 일상에 불시착한 덩어리가 자신의 자기조형성을 거듭 유예하는 장면에 부여된 혹은 그 위에 끼얹어진 외연에 불과하다.

 

피규어 조각의 범주 안에 동원된 각각의 요소들이 나름대로 각축을 벌이는 동안 피규어가 사물을 의태하려는 관성은 역으로 사물이 피규어를 의태하려는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양자는 결코 동일한 가치를 매개로 합선되며 조각적 형상을 선취하지 못하지만 어찌됐든 이를 지향하는 정지화상 속에 함께 포착되고 그 자체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규어 조각은 자신의 내적인 역학을 온전히 해명하지 못한 채 형태와 질감만으로 가시화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피규어다. 피규어로 피규어를 재생산하고자 한다. 실제로 피규어 조각은 전시장 내에 배치된 각종 중고가구와 전자제품과 함께 임의의 가격표를 매단 채 진열되어있다. 이러한 풍경을 찬찬히 훑어보면 결국 조각의 외부에서도 엇비슷한 장면이 연출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누군가 피규어 조각 모델 중 일부를 구입한다면 왜 구입할까? 여타의 물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혹은 여러 사물들이 이미지를 대신해 응축됐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아무런 인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민메이 어택: --캐스트>는 멎어있다. 결국 아야나미 레이 피규어를 처음 맞닥뜨렸을 때의 불편함은 어떤 식으로도 해소되지 않는다. 출처가 명확해질수록 피규어는 단지 불편해지기 위해 조형된 대상이라는 사실만이 강조될 뿐이다. 끼얹어진 외연은 전방위로 굳어있고 그래서 선뜻 무효를 선언한다.

 

1) 권시우 a.k.a 흔들리는 죠, ‘<F/W 16>, 혐오의 오브제 전시하기’, 집단오찬 (http://jipdanochan.com/74) 

2) 돈선필, <피규어 TEXT>, 유어마인드, 2016, 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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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ipdanoc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