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61)
about (1)
notice (0)
project (35)
column (11)
archive (14)




구글 스트리트 뷰로 바라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물


언젠가, 어디선가 ‘국립현대미술관을 좋아하면 힙스터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의아한 기분이 되었던 적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힙스터요…? 힙스터 농담이라는 게 이제 얼마나 쑥스러운 것이 되었는지에 대해 상기하기에 앞서, 그 지루한 허허벌판에 무슨 세련미가 있다고 그런 소리가 떠도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종류를 막론하고, 현재 공간은 ‘인증샷’을 위한 배경 역할을 하느라 1차원적으로 소비된다. 이런 환경에서 대부분의 공간적 경험은 파편화되는 한편 균질화되는데, 서울에는 이제 해상도가 적당한 각종 공간이 많고 그러므로 미술관이 차지할 수 있는 입지라곤 그저 소박한 것으로 보인다. 개중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공적 입지의 거대 미술관이 매개할 수 있는 경험은 경쟁력이 없어 보이고, 그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이제 ‘청년 문화 감상 인구’ 쯤으로 넓게 풀이될 수 있는 ‘힙스터’에게 인기 있다는 사실은 납득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국립현대미술이란 어떤 공간으로 알려지고, 또 활용되고 있을까? 나는 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 몇몇 지인에게 개인적으로 문의했고, 그 결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인상을 수집할 수 있었다.


J (95년생, 재료공학): 서울에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미술관을 일상적으로 갈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외관이 크고, 시설도 되게 많고, 직원도 친절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서 그런지 작품은 난해한 감이 있었지만, 볼 게 많아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찾았던 때가 여름이었는데, 앉아서 쉴 곳도 많아 여유로운 느낌을 받았다.


B (94년생, 경영학): 서울관은 가성비가 좋다. 대림미술관 같은 데보다 볼 것도 많고, 넓고 좋다. 동행은 작품이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긴 했는데, 나는 좋았다. 밥은 근처에서 먹었는데 별로였다. 밥 먹으려면 근처 말고 다른 데로 나가는 게 낫겠더라. 근데 거기 근처가 다 비싸긴 하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은 대부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의미한다. 또 재미있는 언급처럼 보이는 것은 외관이 큰”, “넓고 좋은건축이다. 서울관의 넓은 부지는 전시 경험 이상의 체험을 제공한다. 여기저기 앉아 쉬기 좋고 사진을 찍기도 괜찮은 서울관의 주변 공간은 종종 인스타그램을 주 채널 삼아 활동하는 소규모 개인 사업자의 제품 촬영 장소로도 흔하게 쓰이는데, 어쩌면 이것이 힙스터는 국현을 좋아한다는 소문의 기원이다. 더하여, 놀랍게도 몇몇의 관객은 여전히 전시와 작품을 의식한다. 서울관의 전시는 난해한편인데, 어쩌면 이 사실은 대림미술관 등의 전람회형 전시에 비해 서울관이 현대적 미술관으로서 나름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합하면, 신비롭게도, 서울관이 지니는 외연은 여러 대중 지향형 미술관에 비하면 비교적 넓어서, 모종의 대중적 접면을 확보하는 동시에 미적인 전시를 수행한다.


물론 이 같은 인상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관객의 눈에 난해한전시가 직선적으로 현대적기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며, 넓은 부지 중 대부분을 휴식 공간쯤으로 내버려두는 공간 활용은 미술관이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허나, 서울관의 입지는 애초에 이렇게 고려되었다. 뉴욕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처럼, 조르주-퐁피두 센터(Centre Georges-Pompidou)처럼, 또 테이트 미술관(Tate Modern Museum)처럼, 서울관은 서울의 문화적 상징물이 되고 그리고 또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한국 미술의 상징적 공간이 되고자 했다. 과천, 그리고 덕수궁의 국립현대미술관과는 판이하게 다른 공간으로서, 한국의 가장 동시대적이고 세계적인 기관으로서. 하지만 뉴욕 현대 미술관과 같은 글로벌한 공간과 비교할 때, 국립현대미술관의 약점은 명백했는데, 뉴욕 현대 미술관의 소장품이 15만점에 달하는 데에 비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수는 그 4.7% 남짓에 해당하는 7000여점에 불과하고, 예산 역시 크게 부족해 유명 작가의 대표작을 꾸준히 구입해 소장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점이었다. 서울관을 건립할 당시, 미술관은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대형 미술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 동시대적 미술을 중심으로 의미 있고 특색 있는 기획 전시를 추구하는 한 편 미술사형 미술관을 벗어나 복합문화공간으로 정체화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소비자-관객에게 적응하기 위한 경영적 시야를 적극 도입하고자 계획을 세웠다.[각주:1]

 

미술관의 재정 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특수 법인화 계획이 논의되었던 것 역시 서울관이 건립 당시 표명했던 위와 같은 비전에 호응하기 위해서였다. 허나 10여년 넘게 특별한 진전 없이 정체되던 특수 법인화 논의는 2018 6월 전면 철회되었다. 찾아보아도 철회 사유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이 발표된 적은 없는 듯 한데, 법인화가 서울관의 장기적 비전 중 일부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였다면 이 조용함에는 문제가 있다. 그 필요가 사라진 이후의 미술관에 어떤 전략이 존재하는 지에 대해서도, 함께 조용히 하겠다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018년 연말부터 2019년 초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몇몇 변화가 있었다; 관장이었던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Bartomeu Mari Ribas, 53)가 퇴임하고, 윤범모(67) 동국대 석좌교수가 새로운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이다. 윤범모 관장의 임명이 발표된 이후 미술계는 한 동안 시끄러웠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을 위한 고위 공무원 역량 평가 과정에서 최종 후보자였던 김홍희(71), 윤범모, 이용우(67) 중 이용우 후보자만이 유일하게 평가를 통과했지만, 문체부에서 이후 자체적으로 재평가를 실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재시험이 인사 규정 상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고, 또 재평가 과정에서 최종 후보자 3인이 모두 탈락 커트라인을 넘어 합격점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합격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굳이 역량 평가를 재실시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재평가가 이미 내정되어 있었던 특정 후보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서 실시된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최종 후보자이자 1차 역량 평가의 유일한 합격자였던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는 입장문을 통해 정의구현의 차원에서, 그 어느 때 보다도 기대와 소망을 많이 걸었던 이번 정부인데 참 많이 아쉽다. 촛불혁명은 깨어난 시민, 국민들이 이루었는데 정치인들은 열매나 즐기며 문화예술계를 너무 쉽게 보는 것은 아닌가.”라며, “국립현대미술관의 장도를 바란다.”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매체에서 문체부의 결정을 비판했지만, 아직 문체부는 공식적으로 해명하지 않았고, 나는 그냥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궁금하다.


취임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윤범모 관장. 3월 5일 열린 취임 간담회에서 윤범모 관장은 "비판에 대해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사진 출처: 뉴시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90305_0000576749&cid=10701)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 계획이 철회된 사실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 50주년 맞이 중기 운영 혁신 계획안을 발표하던 현장에서 함께 알려졌다고 한다. 철회 사실이 법인화와 관련된 간담회가 아니라 중기 운영 혁신 계획안을 발표하던 현장에서 갑작스럽게 공지된 만큼, 철회와 관련된 세부 사항은 공지되지 않았다. 다만 이에 대해 문체부 차원의 견해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당시 발표 현장에서 발언한 박위진 기획운영단장의 말을 따르자면, 법인화 논의를 백지화한 데에는 예측 가능한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문체부 차원의 목표가 있었다고 한다.[각주:2] 예측 가능한 미술관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문체부에서 상정한 해석이 궁금해지지만, 편히 해석하자면 그것은 고정된 절차 아래 굴러가는 미술관 운영을 뜻할 듯도 하다. 적절한 기획 주제를 선정하고, 기관 내외의 적합한 인물/팀에게 충분한 예산과 기간을 주고 연구할 수 있게 하는 체계적 절차와 그를 뒷받침하는 합리적 행정. 이것으로 성립되는 예측 가능한 미술관이라는 비전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당장의 문체부에게 예측 가능한 미술관이란, 정부에서 선호하는 인사를 어떻게든 관장으로 선임하면 만들어지는, 그런 성격의 미술관이었던 것 같다. 체계와 합리성이란 예산을 한 해 700억씩 소모하는 미술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전임이었던 마리 관장이 갖는 위치는 확실했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역사 중 최초의 외국인 관장으로, 특정 계파로 분열된 (진짜 촌스러워 죽겠네!) 한국 미술계에 예외적인 중립의 역할을 기대 받았다. (그가 미술계의 히딩크정도로 불렸다는 사실도 일단 기록해둔다.) 마리 관장은 글로벌한 미술관을 지향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목표에 맞추어, 앤디 워홀, 리처드 해밀턴, 파블로 피카소 등 서양 근현대미술 거장의 작품을 순차적으로 전시할 것을 계획하기도 했다. 재정적, 그리고 행정적 차원의 문제가 겹쳐 계획되어있던 앤디 워홀, 피카소 전시 등은 결국 취소되었지만,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은 다원예술 프로그램(감독 김성희)을 개최해 아시아를 비롯한 해외의 동시대적 예술을 선보이는 등, ‘글로벌한 성과가 아주 전무했던 것은 아니었다.[각주:3]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 시기의 국립현대미술관과 윤범모 관장 시기의 국립현대미술관은 서로 무척 다를 것이다. 윤범모 관장은 동인 현실과 발언의 창립 멤버로서 대표적인 민중미술 인사로 꼽히며, 한국 미술계가 서구미술사조 중심적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하는 한국 근대미술의 연구자이기도 하다. 반면 바르토메우 마리 전 관장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장으로 일했고, 그렇기에 윤범모 관장에 비하면 활동 반경은 보다 국제적이다. 윤범모 관장 시기의 국립현대미술관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고, 그것은 한편으로 마리 관장 시기의 국립현대미술관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일을 포함할 것이다. 지난 3년간 관장으로 하여금 세계적 미술관을 향한 계획을 제출/실행하게 해놓고, 관장을 교체하는 시기가 되자 또 다른 단절을 만들어버리는 것 이것은 무척 소모적이다. 윤범모 관장 시기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어떤 기획과 프로그램을 선보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허나 이런 종류의 단절은 정권이 바뀌고 또 관장이 바뀌면, 다시 전과 전혀 다른 형체 없는 비전이 미술관을 장악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하게 만든다. 국내 유일의 국립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이 이처럼 3년을 주기로 바쁘게 달라지는 미술관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생각해보아도 즐겁지 않다.

 

공허로서의 국립현대미술관. 이 표현은 아름다워 보인다. 어쩌면 이처럼 무조건적인 공허로 남는 미술관도 미적으로 의미 있을지 모른다. 허나 완전한 공허는 가능하지 않기에, 미술관은 여전히 관객을 모으고, 예산을 집행하고, 전시를 기획하고, 이런저런 연락을 돌리면서 실존한다. 불태우거나 공허로 만들어버릴 수 없는, 실존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은 싫어도 한국 미술계의 중심적 공간으로 무시해버리기 어려운 존재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 직급은 차관급으로 격상, 임명제로 바뀌어야 한다. 3년 남짓에 불과한 짧은 재임 기간 역시 미술관 운영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다. 미술관의 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그를 지탱할 수 있는 행정적 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관장의 임기 기간과 직급의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나아가 다양한 결정권과 재량권이 함께 주어져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문체부의, 나아가 정부의 정치적 지향점을 장식하는 하위 기관이 아니라 독립적인 기관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만약 예측 가능한 미술관이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갖는 유일한 비전이라면, 그것은 억지 행정으로 이뤄지는 여태까지의 미술관으로 마무리 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체계와 절차를 위한 비전으로, 장기적 운영을 위한 계획으로 새롭게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다만 안정적 운영이 모든 것은 아니다. 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한 부분은 최대한 동시대적이고 실험적인 공간으로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믿는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올해 10월을 목표로, ‘새로운 MoMA’를 위한 물리적/비물리적 변화를 예고했다. 20196월부터 10월까지, 4개월 간의 휴관을 앞둔 MoMA는 휴관 기간 동안 확장 공사를 진행할 예정인데, 확장된 미술관에서는 그 동안 전시되지 못했던 소수 인종 미술가와 여성 미술가의 작품 컬렉션을 재배치하여 선보일 계획이다. MoMA의 관장인 글렌 D. 로우리(Glenn D. Lowry)는 새로운 MoMA에 대해서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는 아이디어를 탐구하고, 우리 시대의 예술로부터 영감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미술관을 실험실, ‘공중이 초대되는 실험실로 정의했던 알프레드 H. 바 주니어(Alfred H. Barr Jr.)의 이상을 참조하고 계승하는 것이다.[각주:4] 이 같은 MoMA의 비전에 대해 평가하기에 앞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면 과거의 미술관과 오늘의 미술관을 연결하고, 또 그를 통해 미래의 미술관을 제시할 수 있는 어떤 연속성이다. 그렇다면 국립현대미술관에게 참조할 수 있는 이상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으며, 만약 그것이 어딘가에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여,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이곳이 안정적으로 고이는 공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비전과 실험이 필요할까?

 

오늘도 어제도, 또 무엇도 없는 시대라곤 하지만 여전히 세계는 다양한 산업적/정치적 가능성들이 대두되는 급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기에 같은 이야기를 하는 같은 사람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위치를 점할 때, 답답한 마음은 심각해진다. 영원히 지겨울 것 같은 국립현대미술관이지만, 기관이 여러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또 문체부가 절차적 불공정함에 대해 해명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길 바라며, 나아가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현대 미술의 중추적 공간으로서, 미래를 위해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다지길 바란다. 이외에 더 많은 바라는 점들이 있고, 그 얘기 또한 다음에 어떻게 해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한국을 떠나는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웃는 모습. (사진 출처: 뉴시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1208_0000496737)




  1.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 목적 및 기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기본계획연구』, 2009년 [본문으로]
  2. 「국립현대미술관 법인화 철회… 마리 관장과 혁신안」, 뉴시스, 2018-06-26,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0626_0000346656 [본문으로]
  3. 이외에도 마리 관장이 직접 거론한 성과로는 전시와 출판, 소통 능력에 있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조직개편이 있다. 「임기 2년 맞은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매일경제, 2017-09-19, http://news.mk.co.kr/newsRead.php?sc=30000001&year=2017&no=629625 [본문으로]
  4. 뉴욕 현대미술관 웹페이지 참조, https://www.moma.org/about/new-moma [본문으로]
Posted by 황재민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