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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브맘(Dovemom)》 전시 포스터

 

 

작가 김아람은, 개인전 《도브맘(Dovemom)》을 통해 ‘도브맘’으로 행세하기로 결심한다. ‘도브맘’이 대체 무엇인가 하면, 말 그대로 ‘비둘기 엄마’라는 뜻인데, 관련하여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의문이 있겠지만, 일단은 ‘도브맘’이 되고자 하는 김아람의 계획이 《도브맘》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도브맘’이 되기 위한 김아람의 계획은 다음과 같다. 비둘기를 포획한다. 비둘기를 진료한다. 비둘기에게 건강상의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숙소로 데려간다. 비둘기에게 이름을 주고(“후추”), 5일간 동숙한다. 동숙이 끝나면 포획한 장소를 찾아가 방생한다. 이 과정에서, 김아람이 취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기록된다.

 

전시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김아람은 “후추”와 보낸 시간을 선별해 전시장에서 상영하고, 동숙한 이부자리를 옮겨 놓고, 일기를 전시하며, (아마도 동네 사진관에서) 함께 촬영한 사진을 걸어 놓는다. 또한 작가는 자신이 사용하는 노트북을 전시장 가운데에 놓아두었는데, 만약 시간이 충분한 관객이라면 가공되지 않은 영상 로데이터(Raw Data)를 전부 관람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도브맘》은 작가가 후추와 함께 한 5일에 대한 상세한 아카이브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둘기와 짧게나마 반려적 관계를 형성한다는 수행은 다른 동물을 대상으로 그렇게 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듯하다. 생활 반경이 도심으로 제한된 집비둘기(Columbia livia domestica)종은 널려 있는 음식물 찌꺼기를 섭취하며 빠르게 번식했기 때문에, “하늘의 쥐”로 불리며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2009년, 환경부는 ‘야생동식물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예고하며 비둘기를 유해 야생동물로 분류했는데, 이런 분류는 불특정 인구를 대상으로 한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83%에 달하는 지지를 얻기도 했다.[1] 이제 비둘기는 “하늘의 쥐”, 혹은 “닭둘기”로서 도심의 밈(Meme)에 가깝고, 비둘기가 기독교적 서사 안에서 성령의 기적을 의미하는 평화의 상징으로 쓰인 적이 있다는 과거는 놀림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아람은 ‘도브맘’을 자처하는 것으로 혐오스러운 것과 함께하며, 짐짓 타자를 환대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그렇다면 《도브맘》은 선한 성격의 프로젝트다. 불특정 타자를 포획한 뒤 그를 위해 삶의 일부를 공유하는 것으로 다변적 형태의 네트워크를 제시하려는 《도브맘》의 기획은,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작은 동물과 관계 맺으며 상호작용하고 지도 그린다는 미술의 쓰임을 확장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타자와 ‘대화하는’, ‘착한’ 미술은 이미 나름의 작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선량한 기획들은 종종 축복이 되기를 바라는 낮은 목소리의 기도 같은 것이 되어, 예외적 위치를 점하고자 애를 쓴다.

 

그렇지만 이 미끌미끌한 서술은 얼마만큼이나 사실일까? 위와 같은 친절함, 혹은 용감함 사이에서, 미술은 자주 기만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위에서 “예외적 위치를 점하고자 애를 쓴다”고 적은 것은 쓴 그대로의 사실이다. 이런 종류의 미술은 윤리적 딜레마를 자아내고 그것을 차지함으로써, 미적인 것을 위한 질문이 윤리적인 것을 위한 질문이 되게끔 왜곡한다. 판단의 장이 이처럼 왜곡된다면, (세계가 아니라) 미술에 대해 묻는 것은 치사하거나 심지어 비윤리적인 일이 된다. 허나 좋은 것이 곧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 곧 좋은 것이라는 규칙이 분할되었다고 하더라도, 둘 중 어느 측면도 완전히 극복된 적은 없기에, 미술은 언제나 ‘윤리적인 것을 매개하는 재배치의 장’인 만큼이나 ‘소수가 공유하는 내부자 게임의 문법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미술이 타자를 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기도하듯 말하는 장면은 가끔 스스로의 위선을 가리는 깔끔한 장막을 만드는, 기만적 행동으로 마무리된다.

 

《도브맘》을 사례 삼아 살펴보자. 이 선한 프로젝트에는 어딘가 수상쩍은 부분이 있다. 타자를 환대하기 위해 타자를 포획할 수밖에 없는 이 기획은, 미술이 “다변적 형태의 네트워크를 제시”하거나 “삶의 일부를 공유” 하려 들 때 만들어내는 특유의 모순을 자가 폭로한다. 후추는 원했기에 붙잡혔는가? 미술을 위해 희생하는 비둘기가 동물학적으로 가능할까? 김아람은 후추를 포획한 뒤 동물병원으로 데려가 진료하는데, 이것은 후추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류 인플루엔자(AI) 등의 인수 공통 전염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김아람은 후추를 ‘환대’하지만, 동시에 후추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필요를 느낀다.

 

그렇지만 이런 양가성은 이미 전시의 주제 중 하나다. 나아가, 김아람은 기록된 영상에서, 내내 신기할 정도로 진솔하게, 혹은 투명하게 행동한다. 작가는 ‘무엇으로서의 예술가’를 위한 제스처를 취하는 대신, 자신을 그냥 김아람으로 내버려 두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영상의 어떤 내러티브는 자연히 희극적인 것이 된다. 그건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작업을 위해 비둘기를 포획하고자 나선 작가는 비둘기가 생각보다 쉽게 잡히는 동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좌절한다. 비둘기는… 그러니까 길고양이와는 다르므로, 떼로 모여서 바글거리고 그 후추색 군집은 부담스럽다. 그 때문에 작가는 비둘기를 초대하거나 달래가며 꾀는 것이 아니라, 장갑을 끼고, 먹을 만한 것을 던져주며, 마치 사냥꾼과 같은 태도로, 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아람은 마치 사냥꾼과 같이 강인한 사람은 아니므로, 계속해서 독백한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고 한 번만 말해줘. 이것은 윤리적 딜레마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의 태도라기보다는, 미적 해프닝을 일으키기에 앞서 주저하는 사람의 태도처럼 보이므로 희극적이다.

 

 

〈Dovemom〉, 단채널 영상, 2019

 

 

심지어, 작가는 포획 과정에서 익명의 행인으로부터 꾸중을 듣기도 한다. 김아람이 반쯤 망연자실한 채 비둘기 떼를 바라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행인은 지금 이거 허가받고 하시는 일이냐고 따져 묻는데, 그가 그렇게 작가를 힐난하는 이유는 비둘기한테 좀 좋은 걸 던져주시지… 몸에도 안 좋은 짠 걸 던져주시면서 그렇게 하시는 게 그의 입장에서는 아유 아무래도 불편하고 마땅찮기 때문이다.[2] 계속되는 타박 앞에서 작가는 작업과 작업이 지니는 미적 의미를 충분히 항변하지 못한 채, 다만 작업을 끝낼 수 있게 좀 지나가 주시라고 (짜증을 조금 섞어) 요청할 따름이다. 결국 행인은 지나쳐 가지만, 작가는 충격을 받았다는 듯 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작게 말한다. 진짜 비둘기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어… 여기서 ‘도브맘’이 필요로 하는 윤리적 우위는 흔들린다.

 

 

〈후추엄마1〉, 단채널 영상, 2019

 

 

끝까지 뭔가 ‘랜덤한’ 순간으로 가득 한 《도브맘》의 서사에는, 환대하고 관계 맺는 미술(들)에 대한 코멘트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무엇으로서의 미술가’로 행세하는 일에 그렇게까지 몰입하지는 못하는 것 같은 김아람은, 후추와 동숙하는 동안 치킨(!)을 시켜 먹고, 노트북 위로 분변을 흩뿌려 놓은 후추를 진짜 죽이고 싶은데 저걸 어떻게 죽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그에 따라 전시는 관계적 네트워크를 창출하는 느슨한 미적 실천쯤으로 보인다기보단 어느 예술가의 기이한 프로젝트를 촬영한 다큐멘터리 같은 것과 비슷하게 보인다. 전시는 환대-관계를 위해 필요한 암묵적인 법칙 같은 것을 보기 좋게 무시하지만, 비평적 태도를 취하지는 않기 때문에 꽤 흥미롭고 또 아이러니하다. 후추와 함께 한 5일을 회고하는 영상에서, 작가는 본인이 느낀 바를 두서없이 서술한다. 이 자기 회고에서, 김아람은 본인이 연출한 딜레마가 생각보다 꽤 거대하다는 사실을 알고, 생각보다 “존나 괴로”웠다는 것을 체감하지만, 유사-반려동물화된 후추와 보낸 5일이 생각보다 즐거웠다는 사실 역시 인정한다.

 

 

〈후추엄마3〉, 단채널 영상, 2019

 

 

5일간의 동숙이 끝나자, 후추는 작가에 의해 방생된다. 후추는 무리로 순식간에 섞여 들어가고, 무리로 섞인 후추는 다른 비둘기들과 잘 구분되지 않는다. 후추는 허무하게 잡힌 것처럼 허무하게 떠난다. 《도브맘》은 흥미롭게 허무한 서사 구조를 갖추고 있다. 만약 후추와 김아람의 이야기를 타자와 관계 맺는 도구로서의 미술에 대한 비유, 혹은 우화로 읽는 게 가능하다면, 냉소적이지는 않은 방식으로 허무한 ‘도브맘’의 이야기는 그와 같은 시도들이 사실 미술을 통해 해결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것들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노출한다. 이처럼 관계가 선택하고 만들어내는 것도, 또 끝내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도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면, 미술의 영역에서 유행했던 그 수많은 만남의 순간들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만남을 위해 설계한 미적 프레임 안에서 부적응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김아람의 전시는 이런저런 질문을 제기하고, 이와 같은 물음 역시 그 다양한 질문의 일부가 된다.

 

 

《도브맘(Dovemom)》 설치 전경, 2019

 

 

 


[1] 「“비둘기 싫어요”…‘평화의 상징’에서 ‘닭둘기’ 된 사연은?」, SBS News, 2017-10-24,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450533

[2] 허나 작가가 던져준 먹을거리는 과자 ‘아이비’로, 과연 그것이 비둘기에게 몸에도 안 좋은 짠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Posted by 황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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