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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로서의 조각가


최하늘



1.


 모더니즘을 조금 더디게 수용한 한국 현대미술은 서구의 방식을 나름대로 소화시켜가면서 일군의 뛰어난 작가와 기획자에 의해 꾸역꾸역 발전의 방향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동시대성을 획득한 이후 한국 현대미술은 다소 길을 잃은 모양새로 평가받곤 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중 시장이 무너진 한국 현대미술이 오로지 관 중심의 공적 기금에 의존해 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취약한 구조의 공회전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또한 쉽게 개선될 수 없다는 점 역시 대부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한국 현대미술이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국내 미술대학은 이와 반대로 모더니즘의 시간에 멈춰있는 듯 보인다. 물론 그렇지 않은 학교도 있겠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미술대학은 매체에 따라 학과를 분리시켜 교육하고 있다. 주로 조소과라고 명명된 학과에서는 전통적 재료를 다루는 기술을 연마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조소학과 학생들은 돌, 나무, 흙 등 아주 오래된 조각의 재료에서부터 금속, 3D 프린팅, 화공약품 등 비교적 최근의 기술이 접목된 분야까지 폭넓게 수학하는데 이와 같은 재료, 기술 중심적 방식은 일본 혹은 미국에서 서양의 모더니즘을 배워 귀국한 1세대 현대미술가들에 의해 정립된 방식이다. 다만 이와 같은 교육 방식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수정 없이 이어져오고 있으며 이는 동시대 현대미술계와 크게 엇나가고 있다.

 한국 근대 조각은 서양과 크게 다르지 않게 물성과 재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였는데, 이는 단순히 표현의 수단으로써 사용되는 재료에 대해서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현상학적 논의와 더불어, 마찬가지로 서양에서 수입된 존재론적인 입장이 가미되었는데 즉, 재료는 작가의 의식 전반을 상징하고 그것으로 만든 조각에는 특수한 작가적 체험이 깃들어져 있거나 혹은 사회적인 맥락을 갖는다는 태도로 조각 논의의 자장을 키워 나갔다. 또한 여기에 한국적인 것을 탐색해야 한다는 지상과제까지 덧붙여져서 조각은 국지적 한계를 초월하며 전통과 현실을 잇는 매개체가 되었다.

 다케우치 도시오는 자신의 저서 미학 예술학 사전에서 실재적인 것과 비실재적인 것이 합체된 것으로서의 재료를 주장한다. 조각가에게 재료가 중요하다는 점을 전제로 하는 이와 같은 해석은 재료의 물리적인 면이 작업의 근본이 된다는 일반적인 주장과 더불어 재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상징, 맥락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설정한다. 쉽게 말해, 전후 한국에서는 도처에 철이 널려 있었고 이 철은 조각가들에게 선택되어 여러 용접 조각으로 재탄생되었다. 철은 전후의 분위기를 전하는 데 매우 적절한 재료로 여겨졌으며 대부분의 용접 조각은 주로 전쟁의 상흔이라고 하는 세대의 공통적인 공감대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후 철은 근대성의 상징으로 고정되었고 용접이라고 하는 특수한 기술로 그간 흙과 나무가 다룰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조형을 다루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명료한 해석은 주로 여러 재료를 다루는 조각만의 특수한 부분이라 여겨지며 하나의 특징으로 부각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재료 중심주의적 사고를 낳은 양날의 검이었다


 조각과 그림의 사이에 있는 미묘한 다른 지점을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재료 가공 장소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림과 다르게 조각은 재료를 가공할 수 있는 특수한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한다. 단순히 철이 널려있다고 해서 모두가 용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용접에는 아세틸렌과 산소 가스가 필요했으며 철을 달구고 이어 붙일 수 있는 특별한 장비가 필요했다. 김정숙(1917-1991)은 미국 유학 후 1957년에 홍익대학교의 교수로 취임하면서 용접 조각실철사 조각실을 개설해서 용접 조각의 유행에 힘을 보탰다. 또한 이와 더불어 대부분의 주류 조소과에는 돌을 가공할 수 있는 석조실과 흙을 다루는 소조실을 꾸렸고 이를 통해 학생들은 전통 재료의 기법을 폭넓게 연구할 수 있었다.

 김종영(1915-1982)이 조소과 교수로 부임한 서울대에서는 그를 따라 추상 조각을 제작하는 학생들이 많았으며 이후 학교 차원에서 재료에 대한 탐구를 장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보수적인 전통 재료에 국한된 교육은 당시 모든 사물을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포스트모던적 태도가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였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굉장히 보수적이었다. 또한 이와 더불어 전통적인 조각 재료인 흙과 나무 돌 금속이 갖는 상징성은 더욱 강조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와 같은 태도는 조각가가 재료의 다양성과 더불어 그 전통적인 맥락, 특성과 조화되지 못한다면 제대로 조각을 만들 수 없다는 섣부른 결론을 나았고, 많은 조각가들이 재료의 물성에 대해 더욱 천착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후 작가들은 모든 재료가 시각, 촉각과 더불어 정신적, 심리적, 정서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물론 한국의 본격적인 산업화 이후 쏟아지는 신소재가 조각가들을 흥분시켰다는 사실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종래의 독해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더 이상 돌과 나무 금속에 만족할 수 없었던 조각가들은 플렉시글라스(아크릴), PVC, 스테인리스스틸과 같은 산업재료와 더불어 새로 출시된 산업용 접착제나 리벳 등을 실험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과거에 행해져온 소재적 특성을 이용한 분석이나 상징이 덮어씌워졌다. 이와 더불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이 한국을 휩쓸며 조각 개념에 대한 해체와 동시에 설치 장르의 대두가 본격화되었고 한국의 현대미술이 동시대성을 장착하기 시작하면서 비미술적 재료의 사용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후 조각 외에도 재료에 대한 작가들의 관심은 현대미술이 갖는 하나의 큰 특징으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비미술적 재료를 사용하는 조각가들이 등장하였다고 하나, 그들은 비미술적이라는 특징 때문에 더욱 재료에 집착하는 퇴행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한국성을 상징하는, 산업화를 상징하는, 노동을 상징하는, 여성을 상징하는, 소수자를 상징하는 재료와 수행성을 모색하고 이를 통해 제작된 작업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상징성에 의해서만, 미술계 내에서의 탈식민적 지위 속에서만 독해될 수 있었다. 또한 반대로 조각의 전통 재료들은 낡은 것으로 평가 절하되기 시작하며 작가들과 멀어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재료에 대한 논의는 해당 재료가 사회 안에서 어떻게 상징가치를 획득하는지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고 그저 새롭게 등장하는 재료에 기존의 프레임을 덮어 씌워버리는 악순환이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는 독해 양상과 더불어 간혹 재료를 신성시하는 모습까지 포착되곤 했다. 이를테면 현대 산업 기술의 발달로 인한 조각 기술의 다양화는 곧 조각 재료의 다양한 쓰임과 같으므로 이것은 조각 작품의 형태뿐 만 아니라 재료가 물리적 매체 차원을 넘어서 조각 자체의 존재가치를 형성하는 결정적 요소”(이창림, 2002)라고 여겨지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태도는 여전히 조각을 독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준거가 되고 있으며 동시에 모든 조각가들을 옳아 매는 족쇄가 되었다.

 물론 조각가에게 재료에 대한 이해와 물성에 대한 탐구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것이 근대를 관통하는 모더니즘의 핵심이었다는 사실 역시 인지하고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지점에서 내가 드는 의문은 조금 더 미래 시제에 속해있으며 조각가라는 직업에서 출발한다. 앞으로 산업 기술의 발전은 계속될 것이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조각가는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만 할까. 새로 등장하는 재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전통 매체로 회귀하는 것이 정답일까. 새로운 재료를 계속 쫓아가면서 맥락을 부여하는 것은 작가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기술을 앞지르는 조각이란 불가능한 것일까. 이와 같은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동시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흥미로운 조각가 몇몇을 대조하면서 작은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2.


 물론 여전히 동시대 조각가들은 재료에 천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여러 작가들이 다양한 재료를 동원해 조각의 영역을 넓혀왔지만 그에 비해 조각가가 생각하는 조각의 범위 자체는 어느 적정 수준 이상으로 확장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조각이 나날이 해체되는 와중에 조각은 물질을 동반한다는 기본 명제만큼은 지키기 위해 조각가들은 물질을 옹호했다. 이와 같은 불일치는 결국 조각가들에게 신소재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라는 명령을 불러왔고 이는 일정 부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다만 설치미술 등 미술의 다양한 확장을 경험한 작가들은 이제 더 이상 전통 재료에 국한되지 않은 새로운 물질 혹은 조각에 적합하다고 여겨지지 못한 물질을 적극적으로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지점에서 권오상(1974-)의 입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홍익대학교를 졸업할 시점부터 조각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는 무거운 조각을 피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돌을 사방에서 사진촬영하고 이를 똑같이 아이소핑크로 조각한 뒤 그 위에 각각의 사진들을 오려 붙이는 방법론을 창안했다. 사진이라고 하는 평면 매체를 조각에 성공적으로 입힌 그는 자신의 방법론을 스스로 데오드란트 타입이라고 칭하며 관련 연작을 진행해왔다.

 다만 그의 사진 조각은 처음부터 한계점을 안고 출발했다는 취약점이 있었다. 사진 자체를 수렴한 그의 조각은 애당초 그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아주 즉각적이고 간단 명쾌한 대답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단계가 없이 말끔하게 해소된 그의 질문은 새로운 질문을 억지로 찾아야만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조각 표면을 구성하는 물질적 재료에 더 천착하는 경향을 벗어날 도리가 없었는데 이는 개인이 극복할 수 없는 산업 차원 규모의 고민이었다. 외려 사진술의 발전을 기다려야만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인 그는 위와 같은 한계점을 인식한 뒤 2003년부터 과감히 더 플랫연작을 시작했고 뒤이어 2005년부터는 더 스컬프쳐연작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데오드란트 작업이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목표를 성취했지만 제작 과정이 매우 복잡하며 제작 기간도 길다라는 단점을 언급했다. 즉 그는 과거의 전통 조각이 갖는 창작 과정의 지난함 역시 조각의 무게만큼이나 그가 피하고 싶은 것임을 천명하고 있는데 이 지점에서 나는 그에게 사진술의 발달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만약 사진술이 지금과 다르게 평면의 지지체가 아닌 입체적인 방식으로 출력이 가능해진다면 그의 입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물론 그가 손수 제작한 사진 조각은 이미 사진술의 시간을 앞질렀다고 볼 수 있지만 그가 기술 및 재료에 매우 의존적인 작업을 전개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그의 작업을 위태롭게 만든다.

 또한 이미지가 전면에 등장하는 그의 조각은 덩어리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가벼운 재료들을 손쉽게 은폐한다. 완벽하게 마감된 조각의 표면 어디에서도 아이소핑크의 흔적은 찾을 수 없는데, 이는 그가 여전히 가소성이 높은 산업재료의 사용이 큼지막하게 드러내는 것을 이미지 차원에서 부담스러워한다고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그는 여전히 모더니즘적 완성 개념을 본인 조각에 도입하고 있다. 물론 그는 지금도 한국 현대 조각계의 주축으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추후 그의 작업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쉽게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 역시 본인의 한계를 매우 잘 인지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오상과 매우 유사하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종이조각을 만들고 있는 황수연(1981-)은 권오상이 유지하고 있는 조각의 불변성마저도 해체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프린트된 종이 혹은 직접 색을 입힌 종이를 절개해 전개도를 만들고 이를 작업실에서 접합시켜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그의 조각은 매우 연약하다는 특징에서 조각의 오래된 정의를 공격하고 있는 일련의 시도와 궤를 함께 한다. 또한 사진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재현 이미지가 등장하는 권오상의 조각과 다르게 황수연의 조각은 종이에 그 어떠한 이미지도 없다. 그렇기에 그의 조각은 권오상의 조각과 다르게 재료 자체가 조금 더 부각된다. 물론 사람 혹은 사물, 다른 생명체를 조형하는 조각은 때때로 구체적인 형상을 드러내기도 하며 작가 스스로 제목을 통해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은유하기도 하지만, 그의 조각 대부분은 어떤 모듈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완성된 조각의 형태보다는 재료 자체, 작가의 수행성이 강조된다.

 권오상이 전면에 극적인 이미지를 통해 내부에 위치한 재료를 은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면, 황수연은 그와 반대로 이미지의 은폐를 통해 재료와 작가의 수행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만 황수연의 태도 역시 과거 모더니즘, 혹은 그 이후 재료에 대해 사유해오던 조각가들의 태도와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미술 혹은 조각에 적합하다고 여길 수 없는 재료로 조각을 생산하는 태도는 결국 작가에게 새로운 재료를 찾으러 다니게 만든다. 물론 아직 그에게 종이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무궁무진한 형태가 남아있겠지만 동시에 종이라는 재료가 조형할 수 있는 형태는 꽤나 한정적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또한 재료의 물성을 뛰어넘는 형태가 조형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이 요구된다. 결국 재료와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야만 한다는 순환은 변하지 않는다.

 황수연과 비슷하지만 또 다르게 문이삭(1986-) 역시 흥미로운 지점을 선보인다. 그는 3D max를 이용해 스티로폼을 잘라 어떤 형상을 도출하고 이를 날 것 그대로 전시장에 배치한다. 물론 스티로폼의 표면에 특수한 가공 처리를 하지만 그렇다고 스티로폼이라고 하는 재료를 완전히 지워버리지는 않고 관객 역시 해당 물질이 스티로폼이라는 사실을 손쉽게 인지할 수 있다.

 오픈 소스를 이용해 조각을 생산하는 작가들은 여럿 있어왔지만 그의 독특한 지점은 이를 전시장에 배치할 때 과거의 문법이 아니라 3D max의 가상공간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점에 있다. 그의 조각은 마치 마우스 커서를 돌리면서 화면을 회전하는 형식과 유사하게, 관객이 몸을 움직이면서 완전히 결합되지 않은 어떤 3D 렌더링 개체의 전개도를 탐색하게 만든다. 즉 그는 기술적 환경을 이용해 제작된 조각의 배치를 통해 조각의 시간성과 운동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조각이 제작되는 방식에 투과된 기술적 환경이 강조되는 결과를 도출한다. 더불어 이는 결과물로써 제시되는 조각의 물성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 관객은 그의 조각이 꼭 스티로폼이어야만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고민은 현대사회에서 조각가의 위치, 현대적 기술의 한계점을 직시하게 하며 작가의 방법론이 갖는 기술적 한계는 부각된다. 물론 그가 스티로폼이 아닌 다른 적합한 재료를 찾는다면 과연 그가 다른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나의 추측은 그에게 있어서 스티로폼은 그저 가소성이 좋다는 이유로 동원된 것이며 더욱 간편하고 실용적인 재료가 등장한다면 그는 언제든 조각의 재료를 바꿀 것이다.

 조각을 통해 기술적 환경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는 대체로 조각의 재료가 작가에게 부여한 어떤 속박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있어 동원되는 물질은 그저 기술에 용이한 조건만을 갖추면 되는 것이다. 만약 고도의 절삭 기술이 지금보다 더 보편화된다고 하면, 즉 스티로폼보다 딱딱한 물질도 쉽게 자를 수 있는 기술이 보편화된다면 그의 재료는 더욱 단단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그가 재료에 대해 일정 부분 해방되었다고 하나 그만큼 그의 기술 의존도가 다른 작가들에 비해 높다는 점은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작가들과 조금 다르게 조각가 권현빈(1990-)은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재료가 개인의 취향을 우선했다는 사실을 학위 논문에서 숨기지 않는다. 특히 그가 구름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하는 스티로폼은 비교적 가벼운특성 덕분에 외부의 개입 없이 개인의 역량으로 통제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과거의 재료는 그의 생각 속도를 따라오기에 너무 무거운 재료였으며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매 순간 바뀌는 형태를 표현하기에는 스티로폼이 가장 적절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또한 스티로폼과 동시에 천, 비닐, 실란트, 핸디코트, 우레탄, 레진, 각종 코팅제를 사용하는 그는 결국 조각의 재료 선택에 있어서 빠른 속도감을 가장 중요한 선택 근거로 들고 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제작 과정에서의 실용성을 바탕에 둔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재료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조각의 고정된 정의를 반영하지 않는 방식은 제작에서 역시 이어진다. 스티로폼을 자른 뒤 몇몇 부위에 실란트와 핸디코트를 바르는 방식은 스티로폼의 몸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육중한 덩어리감을 가지고 있으나 보는 이는 스티로폼의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으며 물질에게 압도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산업재료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색이나 부피를 크게 변형시키지 않음으로써 그에게 있어서 스티로폼은 여러모로 적절하게 선택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만약 구름을 표현하기에 스티로폼보다 조금 더 적절한 재료가 등장한다면 권현빈은 고민 없이 새로운 재료로 교체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이와 같이 재료 선택에 있어서 작가의 자의적인 편리함을 강조하고 재료가 날 것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반대로 말해 작업의 중추가 재료가 된다는 과거의 방식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즉 전시장에 노출된 스티로폼은 한국 현대 산업의 결과물로써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과거 용접기술과 철이 등장해 국전에 출품된 추상 조각들이 대부분 용접 조각이었던 시절을 상기시킨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판단 유예한 현실을 조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각가 부모를 둔 그가 열심히 돌을 갈아 만드는 부모의 작업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조각을 지속해나갈지 고민하는 것이 그에게 중요한 과제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형상을 도출하기 위해 적합한 재료를 찾는 과정에서 과거 세대와 확실한 차별점을 두고 있지만, 그 이후의 과정, 즉 스티로폼의 사회적 상징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권현빈과 같이 재료 선택에서 일정 부분 해방된 작가로 오은(1988-)을 들 수 있다. 그가 201911월에 스튜디오148에서 개최한 개인전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을 보면, 전시장에는 30여 점의 회화와 조각이 놓여있었고 대부분 한국 근현대미술의 명작을 재현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가 재현하고자 했던 한국 미술사의 중요 저작들은 고희동에서부터 박이소까지 매우 폭넓은 시간을 설정하고 있는데, 작가는 해당 작업의 선택 기준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중 이쾌대 등 월북 미술가의 작업이 선택되었고, 김복진, 윤효중, 김종영을 선택함으로써 계파에 입각해 조각가를 선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료히 했다. 여기에 나혜석과 같은 여성 미술가도 포함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으며 오윤의 판화와 박서보의 묘법을 동시에 재현해 이와 같은 선택 기준이 진영에 의해 나눠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에 대해서 작가는 해당 전시 도록에서 자세히 보면 우리 미술사의 특정 순간순간들을 각각 지시하며 자리하고 있다고 말하고 여기에 기본적으로 성취의 순간들이기도 하지만 논란 혹은 파탄의 순간들이기도 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뒤엉킨 순간순간들을 견습생의 눈으로, 마치 자화상 습작을 그리듯이 하나하나 렌더링한다고 말하며 이와 같은 기준이 모두 자의적인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즉 그가 선택한 14점의 회화와 17점의 조각은 모두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 미술의 주요한 순간들이며 무엇이 이와 같은 작가들을 매료시켰는지 탐색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작업의 재현을 통해 어떤 정신성을 시뮬레이션한다는 목표를 두었고 그것이 향토, , 원형, 민족, 전통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물론 그의 재현이 완벽하지는 않고 본인 역시 완벽한 재현을 목표로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천명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탄생한 군집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일종의 동시대적 자화상이 되길 희망하고 있는 상태에 놓이며 모든 선택을 관객에게 떠민 채 자기 자신은 그저 하나의 조각이 되어 전시장에 어물쩍 배치된다.

 그의 의도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지금 여기서 내가 논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다만 내가 전시장에서 마주한 조각의 재현물들은 하나같이 모두 엉성했다는 점이 내 논의점과 부합한다. 물론 그 엉성함은 전시장 안에서 통일되고 정제된 미감이었으며, 이를 통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전시장에 마련된 캡션에는 원작과 재현물을 병치시킨 사진이 있었고 해당 자료와 본인의 재현물이 얼마나 비슷한지, 얼마나 다른지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그가 조각을 재현할 때 사용한 재료들은 석고와 아이소핑크, FRP등 매우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으며, 이는 간혹 원본과 동일한 재료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재료가 되기도 했다. 평면을 입체로 재현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원작이 소실되어 크기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임의로 재현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과거의 작업을 소환하는 것이 어떤 충실한 리서치에 기반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어떤 구색을 맞추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서 원본을 조형하기 위해 동원되는 재료는 모두 실용성에 기반하고 있다. 재료 소환에 있어서 가공의 용이함을 가장 큰 기준으로 잡고 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그가 재료 사용에 있어서 조각가들이 겪는 고통을 일종의 일반적인 사실로 적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몇몇 작품은 실제가 아닌 사진만으로 원본을 접했고 작가는 조각을 기록하기 위해 찍은 사진의 각도 이외의 부분은 과감하게 마무리를 생략했으며 실제 조각의 부분만을 채집해 재현하기도 했다. 관객은 김경승과 윤효중의 기념비 조각을 재현한 오은의 조각 뒤편에 있는 핑크색의 아이소핑크를 낱낱이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태도는 전시장 곳곳에 널려있다. 브론즈로 만든 김경승의 맥아더 장군상을 작가는 석고로 재현하고 있고 나무로 만든 김종영의 자각상 역시 석고로 재현했으며 권진규의 테라코타 역시 석고로 재현되었다. 마찬가지로 오윤의 판화도 캔버스에 유채로 그려졌으며 종이에 먹으로 그린 박이소의 그림 또한 캔버스에 유채로 재현되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어떤 형상의 느슨한 재현을 목적으로 하되 재료마저 그와 동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대학에서 혹은 그 이후에 취득한 여러 가지 주조 기술을 동원해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의 재현만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석고와 아이소핑크는 그저 하나의 매뉴얼에 불과한 것이다. 만약 그가 석고와 아이소핑크보다 더 간편하고 손쉬운 재료를 새로 매뉴얼에 추가한다면 그는 주저 없이 새로운 재료를 사용할 것이다.

 아처럼 여러 가지 산업 재료를 혼합해 전통적 의미에서 완성된 조각처럼 보이게 하는 그의 능력은 어쩌면 연금술사와 닮아있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섞어 사용할 것이며 이와 같은 태도는 모종의 위트, 후련함을 선사한다.

 

 분명 누군가는 거대한 자금을 들여 과거 유물의 동위원소를 분석하고 이를 동일하게 제작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원본 개념을 뒤흔들고 있다. 또한 누군가는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사용해 조각을 뛰어넘는 건축적 스케일에 도전하며 과학과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조각가들이 재료를 탐구하고 도전하는 자세는 여전히 유효하며 중요하다. 이 단단한 명제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나간 시간은 우리에게 다른 태도를 갖게 만들었다는 사실 역시 중요하다. 조각의 언어는 여전히 고정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재료 그 자체가 작업의, 전시의 결과물이 되는 시기는 종결했다. 우리는 여전히 전시장에 너저분하게 펼쳐져 있는 부서질 거 같은 감각에 흥미를 상실한지 오래다. 한창 3D 프린터 기술이 보급화되고 활발하게 논의가 전개되었을 때 전시장에 놓여 있던 낮은 사양의 프린트물은 이제 더 이상 신기하지 않고 그저 가난함을 은유하는 상징물로 독해될 뿐이다.

 이제 글의 서두에 적어놓은 질문을 다시 소환해보자. 조각가는 과연 언제나 새로 등장하는 기술과 재료를 따라다녀야만 하는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조각가는 이와 관련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리는 이제 완성의 개념마저 기술과 재료의 시간에 빼앗겨버렸다. 과거 돌과 나무, 흙을 전문적으로 깎던 조각가의 위상은 온데간데없다. 이런 상황에서 조각가들은 전문 기술자의 지위를 과감히 내려놓고 비기념비를 만들며 지위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낡은 것들을 그러모으는 호더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점도 슬며시 깨닫게 되었다. 이제 조각가는 물질과 재현의 세계에서 마술을 부리는 연금술사가 되어야만 한다. 과거 무시당했던 직공이라는 지위가 주던 낭만적인 태도를 벗어난 방향성은 조각의 매체적 실존 자체, 물질의 실존 자체를 우려하는 지금의 상황과 결합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가상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물질을 옹호하고자 했던 과거 조각가들의 태도를 계승하는 것이며, 이를 시대에 맞춰 새롭게 변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연금술사가 화려한 효과를 동원해 환심을 샀던 것과 동시에 의심을 받았던 것처럼 제 맘대로 재료를 혼합해 기존의 질서를 교란하는 조각가에게도 거짓으로 점철되었다는 혐의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거짓은 투명하며 내부를 비추고 그렇기에 재료를 사용하는 태도 자체는 맥락화된다. 그제야 젊은 조각가는 자신의 원론적 단점을 보완할 수 있으며 부담을 떨치고 매체에 집중할 수 있다. 이제 조각가에게 짊어진 부담은 말끔하게 해소된다.

 

Posted by 황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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