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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의 도입부를 제시하기 위한 몇 가지의 사례들


권시우


“기믹은 죽었다.” 김효재는 OS에서의 개인전 《디폴트Default》 이후, 앞선 문장을 작업 내외에서 거듭 주지한다. 이때의 ‘기믹’이란 서브컬처에서 파생된 용어로, 대개 특정한 캐릭터에게 부과된 인위적인 정체성을 의미한다. 즉 해당 캐릭터는 고유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기보다, 작중에서 필요로 하는 어떤 클리셰로 제시된다.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클리셰에 섣불리 (과)몰입하지 않으며, 단지 관객/소비자와 (창작자가 구현한) 캐릭터 간의 합의된 관계를 토대로 ‘기믹’을 유희적으로 소비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철저한 메소드와는 거리가 먼 유희의 방식은, 소셜 미디어가 보편화한 지금의 상황에 충분히 부합한다. 이를테면 사용자는 자신과 연계된 가상의 계정들을 일상적으로 운영하지만, 그것들은 일종의 ‘기믹’에 불과하며, 사용자 본연의 자아를 온전히 재현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기믹’은 사용자와 가상 사이의 일정한 거리감을 전제한 채, 양자의 관계를 적절하게 중재한다. 혹은 ‘기믹’에 의지해 구현된 의사-캐릭터는 언제나 사용자라는 상위의 주체에 종속된 채, 그/그녀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반영하면서, 소위 계정 플레이를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기믹은 죽었다.”로 서두를 뗀 작가의 세계관 내에서, 그러한 안정적인 상태는 점차 와해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SSUL〉(2019)의 화자인 김나라가 직접 토로하는 소위 ‘하라주쿠 썰’은 “자신의 이미지가 얼마든지 누군가에 의해 남용되어 데이터 차원에서 확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각주:1]하면서, ‘기믹’을 관리/통제하는 사용자-주체의 권한이 효력을 다했음을 폭로한다. “그러나 이는 섣부른 비관주의로 귀결되지 않는다.”[각주:2] 오히려 “기믹은 죽었다.”라는 선언은, 그것을 기점 삼아 사용자라는 모델을 급진적으로 재구성하기를 바란다. 즉 작중의 김나라에게 투사된 각종 장식적인 효과들은 그녀의 콘텐츠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면서, 해당 콘텐츠가 이미지로 남용될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만약 작가가 고안해낸 ‘디폴트’라는 용어가 “모든 것이 데이터로 환원되는 세계”에 최적화한 사용자-주체의 모델을 의미한다면, 이때의 주체는 선천적으로 부여된 단일한 주어의 형식이 아니라, 사용자가 자신이 수집한 일련의 데이터들을 토대로 연출한 결과에 가깝다. 그러나 이때의 사용자는 ‘디폴트’에 점차 (과)몰입하기 시작한다. 즉 이제 소위 리얼리티는 가상 차원의 현존에 의해 좌우되며, 결국 사용자가 리얼리티를 거듭 자각하기 위해선, 자신의 ‘디폴트’를 보다 효과적으로 연출하는 데 천착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는 소셜 미디어 상에서 우파들이 재/생산하는 극단적인 콘텐츠들의 단초이기도 하지만, 그와 별개로 김효재는 《디폴트Default》의 전반에 등장하는 ‘Z’라는 인물을 통해, 사용자의 정체성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Z’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세대를 대변하는 한편, 3D랜더링된 아기의 형상을 한 채, 김나라라는 콘텐츠를 노골적으로 선망한다. 그에 부응하듯 <Z>(2019)에서 ‘Z’는 오디오 비주얼의 현란한 전개에 맞춰 춤을 추면서, 자신을 (현실과 무관한) 콘텐츠로 피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관객은 ‘Z’의 정체를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다. 주지하듯 ‘Z’는 “미래의 세대”를 대변한다고 추측될 뿐, 하나의 구체적인 개인으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이 ‘Z’와 어떤 식으로든 상호 작용하는 순간은, 철저히 ‘디폴트’의 맥락에서 ‘Z’라는 콘텐츠를 소비할 때뿐이다. <SSUL>에서 김나라가 자신의 이미지가 남용됐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와중에 일시적인 위기감을 겪었던 것과 달리, ‘Z’에게는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원본, 즉 “사용자 본연의 자아”가 존재하지 않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자신의 리얼리티를 배가하는 행위에만 몰두할 수 있다. 반면 ‘기믹’은 언제나 그것을 관리/통제하는 사용자라는 상위의 주체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위계적이다. 앞서 언급한 “일시적인 위기감”은 단순히 한 개인에게 부과된 정체성의 혼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주체의 권한, 무엇보다 그것이 구축한 위계의 구조가 일순 와해되면서 발생한다. 기존의 사용자는 ‘기믹’을 관리/통제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속해있는 현실에 우선권을 부여하지만, 주지하듯 ‘디폴트’는 오히려 현실을 일종의 데이터 소비재로 활용하면서, 사용자의 좌표를 재설정한다.


새로운 좌표 속에서 리얼리티라는 개념은 점차 모호해진다. 이를테면 “사용자 본연의 자아”가 부재하는 대신, 사용자는 “가상 차원의 현존”을 자각하기 위해, 콘텐츠를 위시한 모종의 정체성을 연출한다. 그러나 “가상 차원의 현존”이란 특정한 좌표에 정주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콘텐츠가 데이터 차원에서 계속 유통되는 상태에 의해 보장된다. 달리 말해 ‘기믹’ 이후의 리얼리티는 사용자가 일종의 교환가치를 부여 받은 채, 가상의 시장을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가까스로 체감될 뿐, 그것의 총체적인 의미는 끊임없이 유보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디폴트’에 근접한 사용자일수록, 그/그녀의 이미지는 일종의 오픈소스로 기능하면서, 여타 사용자들을 현혹하기 위한 장식성을 과시하기에 이른다. 이때의 장식성은 그저 의미론적 내용에만 천착하는 독해의 방식이 아닌, 타인의 직관에 호소할 수 있는 각종 감각적인 요소들을 통해 구현된다. 그리고 이는 <Z>라는 작업이 종내 오디오 비주얼 형식의 작업으로 귀결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오디오 비주얼은 결코 장식성에만 천착하는 매체가 아니지만, 그것이 구현하는 사운드와 이미지의 협연은 기존의 서사 의존적인 무빙 이미지 작업들에 비해, 보다 다채로운 감각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지난 2020년 7월 9일에 아르코 미술관에서 개막한 단체전 《Follow, Flow, Feed 내가 사는 피드》의 부대 행사로 진행된 김효재의 퍼포먼스 <태교 : 도래할 Z에게>(2020)도 마찬가지로 오디오 비주얼 형식을 준수한다. 즉 작가는 ‘Z’라는 인물을 단순히 픽션 차원에서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고안해낸 ‘디폴트’에 근접하는 사용자를 자처하면서, 점차 감각의 층위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물론 해당 작업을 주도하는 영상의 경우, 실제로 작가의 부친이 꾸었다는 태몽에서 유래한 일련의 서사적인 자재들을 임의적으로 재구성한 결과지만, (작가 본인이 믹스한) 테크노 음악의 전개에 조응하는 현란한 비주얼은, 자연스레 ‘디폴트’가 과시하는 장식성을 연상하게끔 한다. 결과적으로 해당 작업의 (사운드와 이미지의 협연을 통해 구현된) 오디오 비주얼은 일단 의사-콘텐츠로서 관객의 감각을 효과적으로 자극하면서, 은연중에 ‘디폴트’의 전략을 구사하기에 이른다. 주지하듯 여전히 잔존하는 서사는 더 이상 작업 전반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작중에서 유동적으로 조절/조율되는 각종 감각적인 요소들의 전개 속에서 의도적으로 모호해진다.


 <태교 : 도래할 Z에게>, 퍼포먼스, 2020     


반면 퍼포머로 참여한 작가가 반복해서 외치는 일련의 대사들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Z’라는 인물에 대한 일종의 강력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즉 《디폴트Default》에서의 ‘Z’가 “가상 차원의 현존”을 체화한 존재로서 줄곧 익명을 자처했던 것과 달리, 이제 작가는 ‘Z’를 특정한 맥락 속에서 호명한다. 특히나 “Z, 괴물이 되거라.”라는 구절에서 언급된 “괴물”은 도나 해러웨이에 대한 인용으로, 서구적 자아의 구조에서 비롯한 적대적 이원론을 전복할 수 있는 경계선상의 존재를 암시한다. 물론 이는 개념적으로 더 이상 심화되지는 않지만, 그와 별개로 본래 ‘Z’가 고수하던 타자성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이를테면 ‘Z’는 자신이 재/생산하는 콘텐츠의 이면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언제나 불가해한 타자로 귀결됐지만, 작가에 의해 “괴물”로 호명된 순간, ‘Z’가 점유하고 있는 타자의 위치는 결국 (무수한 컨텍스트를 함의하는) 전략적인 모호함의 상태로 전유된다. 달리 말해 ‘Z’는 “괴물”로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본 작업의 제목이 지시하는 태교는 그러한 가설을 축원하기 위한 방편인 동시에, 무엇보다 감각의 층위를 활성화하는 오디오 비주얼이라는 매체를 유도하면서, ‘Z’를 둘러싼 정황을 다시금 ‘디폴트’의 맥락으로 수렴한다.


물론 “괴물”의 출처는 명백하지만, 작가는 해당 개념의 총체적인 의미를 참조한다기보다, 단지 그것을 모티프 삼아, ‘디폴트’를 체현하는 ‘Z’를 “경계선상의 존재”로 합리화한다. 결국 ‘Z’가 “괴물”로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설을 입증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주지하듯 본 작업은 서사 차원에서 본격화되지 않은 일종의 도입부에 가까우며, ‘디폴트’와 대응되는 “괴물”이라는 개념은 아직 미결의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개는 김효재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등장한다. 이를테면 <난 마돌> 시리즈는 ‘난 마돌’이라는 가상의 유물을 경유해, 데이터베이스로 귀결된 세계를 나름대로 논증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상편과 하편으로 구성된 본 작업은 ‘난 마돌’로 대변되는 “저작권이 만료된 이미지”에 대한 유사한 말들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마돌’은 작가가 웹상에서 임의대로 선별한 각종 이미지들을 재료 삼아 스크린 인터페이스를 유희하는 과정에 최소한의 얼개를 부여하기 위한 서사적인 단초에 불과하다. 이처럼 작가가 작업 차원에서 고안해낸 일련의 가설들은 대체로 작가 본인이 그 당시에 이입했던 사용자 모델을 반영하는 시/청각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계기로 작용한다. 그것들을 발단 삼은 작업의 서사는 모호할 수 밖에 없지만, 바로 그 모호한 서사야말로 마침내 ‘디폴트’로 귀결되는 사용자의 징후다.


물론 일련의 작업들은 대체로 현란한 비주얼을 과시하는 동시에, 화자가 끊임없이 ‘말’을 하면서 은연중에 이야기를 구상하려고 시도한다. 이를테면 이한범은 <난 마돌> 시리즈에 대해 부연하면서, “더 엄밀히 말하자면 저작권이 만료되거나 곧 만료될 이미지라는 특정한 조건이 주어졌을 때 그 조건으로 인터넷 인터페이스에서 필터링된 결과로서의 이미지의 집합이 서사에 소요되기 위해서는 다른 장치를 요구한다. 여기서 이미지의 연쇄를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이게끔 지탱하는 것이 바로 ‘말’이다.”라고 언급한다.[각주:3] 결국 작가는 여전히 서사의 관성을 의식하면서, “이미지의 집합”만이 남겨진 현재의 조건에 나름대로 대처한 셈인데, 결과적으로 이미지와 ‘말’은 온전히 절충되지 못한 채, 다소 불안정한 상태로 귀결된다. 즉 이미지는 소셜 미디어가 보편화한 상황에서 사용자의 유력한 자기 표현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그것들의 집합은 무작위한 데이터베이스를 형성할 뿐, 결코 하나의 서사로 완결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말’은 “이미지의 집합”을 서사 차원에서 조절/조율하는 데 실패할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이미지와는 무관한 별개의 트랙으로 진행된다. 그렇다면 데이터베이스에 부합하는 서사의 형식은 무엇인가? 이는 김효재를 포함한 동시대 무빙 이미지 작가들이 맞닥뜨리는 고질적인 문제다. 그러나 주지하듯 작가는 그에 대한 대답을 유보한 채, <태교 : 도래할 Z에게>를 기점 삼아, 자신의 방법론을 오디오 비주얼로 선회한다.       


이제 “모호한 서사”는 이미지와 ‘말’이 서로 대치되는 과정에서 비롯된 의도치 않은 결과가 아니라, 오디오 비주얼의 시/청각적인 장치들을 도구 삼아 기존의 서사를 재편함으로써 발생한다. 주지하듯 <태교 : 도래할 Z에게>에서 작가는 태몽을 해설하는 대신, 그로부터 유래한 일련의 서사적인 자재들을 이미지로 환원한 뒤, (이미지에 선행하는) 사운드 작업의 전개에 부합하게끔 제시한다. 즉 한때 ‘말’이 행사했던 주도권은 사운드에게 이양됐으며, “이미지의 집합”은 굳이 서사로 합리화되는 대신, 사운드와 공유하는 감각의 층위 속에서 유동적으로 재구성되기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관객은 ‘디폴트’에 대응되는 “괴물”이라는 개념을 독해하기에 앞서, 작가가 연출한 오디오 비주얼의 무대에 일순 압도당한 채, ‘Z’가 “괴물”이 되기를 축원하는 광경을 기꺼이 감각 차원에서 수용한다. 이는 일종의 제의처럼 보이는데, 또 다른 퍼포머인 양진경은 무대의 중앙에서 사운드와 조응하는 창작 안무를 구사하면서, 그러한 분위기를 배가한다. 결국 ‘Z’는 “괴물”이 되기 위한 도입부에서, 자신의 존재를 설득하기 위한 화자의 역할을 도맡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무리없이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를테면 “괴물”이라는 강력한 메타포는 (오디오 비주얼을 발단 삼아) 활성화시킨 감각의 채널을 경유해, 그와 연루된 모든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전파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본 작업이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중계됐다는 점이다. 이는 분명 코로나 팬대믹의 상황을 의식한 선택이지만, 사실 팬대믹 이전에도 버추얼 미술관을 비롯해 가상 환경에서 미술을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는 빈번했다. 그러나 본 작업은 단순히 현장의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거나, 실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한때 《디폴트Default》에서 중요한 화자로 등장했던 김나라가 무대를 배회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장면을 송출한다. 즉 김나라는 본인을 패션 인플루언서로 정체화한 가상의 계정에서 벗어나, 마침내 현실에 위치한 실제 자신의 모습을 관객에게 드러냈으며, 이로써 자신이 이미지로 남용될 가능성을 유보한다. 달리 말해 이제 ‘디폴트’는 “사용자 본연의 자아”를 침해당하는 과정에서 막연하게 암시되는 대신, ‘기믹’ 이후의 리얼리티를 체화한 인물인 ‘Z’의 정체성으로 기능한다. ‘Z’는 미래에서 현재로 도착하는 중이고, 점차 명확해지는 미래는 더 이상 김나라와 같은 선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본 작업의 중계 영상은 ‘Z’가 괴물이 되기 위한 도입부를 김나라가 목격하고 있는 과정이다. 실제로 ‘Z’로 대변되는 특정한 세대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니다. 그 이전 세대의 관점에서 ‘그들’은 아직 낯선 존재지만, 그와 별개로 ‘그들’의 존재감은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반면 작가는 여전히 ‘Z’를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인물로 상정하는데, 이는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작가의 관점을 일정 부분 반영한다. 물론 Z는 더 이상 “불가해한 타자”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네이티브의 당사자가 아닌) 작가에 의해 “괴물”로 호명됐다는 점에서, 얼마간 대상화의 시선에 종속된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실제 Z세대가 “괴물”로 거듭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불투명하며,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새삼스럽지만, 결국 모든 것은 작가의 가설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주지하듯 본 작업은 특정한 사회적인 현상을 분석하기 위한 일종의 개념적인 프레임을 지향하지 않으며, 다만 ‘디폴트’에 근접한 사용자가 구사하는 감각 차원의 조형 언어를 탐색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사용자 정체성을 급진적으로 재편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설사 ‘Z’가 한때 자신이 대변했던 특정한 세대와 점차 괴리된다고 하더라도, ‘Z’를 위한 축원은 충분히 지속될 수 있다. 달리 말해 ‘Z’는 실제 Z세대의 단순한 표본이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사용자라는 모델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로써 ‘Z’에게 부여된 대상화의 시선은, 그것을 부여한 당사자, 즉 사용자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20년 8월 10일에 일민미술관에서 진행한 온/오프라인 프로젝트 《Ghost Coming 2020 {X-ROOM}》에서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상연된 <태교 : 도래할 Z에게>는 이전 버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방식으로 구성됐다. 이를테면 본 작업에 참여한 퍼포머는 오로지 작가 본인 뿐이며, 무엇보다 작가는 자신의 얼굴에 ‘Z’의 페이스 필터를 적용한 채, 직접 제의에 걸맞는 일련의 동작들을 구사한다. 즉 이제 ‘Z’는 작가에 의해 대상화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작가 자신에게 투사됨으로써 자연스레 사용자의 분신으로 귀결된다. 물론 ‘Z’가 점유하고 있는 미래의 해상도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그와 별개로 사용자는 아직 “괴물”로 거듭나지 않은 ‘Z’의 과도기적인 상태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결국 작중에서 되풀이되는 “Z, 괴물이 되거라.”라는 대사는 (대상화의 시선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언급한 화자의 자기 암시로 기능한다. 뿐만 아니라, ‘Z’의 페이스 필터는 라이브 퍼포먼스 이전에, 작가 이외의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오픈소스로 공개됐는데, 이는 모든 사용자가 별다른 제약 없이 ‘Z’를 자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태교 : 도래할 Z에게>, 퍼포먼스, 2020   


또한 작가는 프로젝트의 지침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일민미술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점유한 채, 본 작업을 예고하는 분할 이미지들을 순차적으로 업로드하면서, 그것들을 인스타그램 그리드 레이아웃에 최적화한 상태로 조합했다. 최종 이미지는 사진 스튜디오 글래머샷과의 협업을 통해 제작했는데, 전면에서 제의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나, 그녀를 둘러싼 중세 풍의 아치형 구조물, 그리고 그것을 장식하고 있는 ‘Z’의 석상과 같은 요소들을 통해 유추할 수 있듯, 일종의 신화적인 도상을 의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관객은 본 작업이 사용자 자신을 위한 제의를 보다 노골적으로 구현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된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중세 풍의 아치형 구조물은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상연되는 영상에 간헐적으로 등장하면서 거듭 주의를 환기시킨다. 무엇보다 해당 영상은 이전 버전을 총 네 개의 막으로 분할해 재구성했으며, 개별 단락은 비록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지만, 태몽에서 유래한 일련의 시각적인 모티프들을 보다 전면에 드러낸다. 이처럼 <태교 : 도래할 Z에게>는 애초에 정합적인 서사의 구조가 부재하므로, 작가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 사실상 일민미술관에서 전개된 작업은 라이브 퍼포먼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이미지들, ‘Z’의 페이스 필터, 이 모든 형식들을 포괄하고 있다.


<태교 : 도래할 Z에게>, 도상 이미지, 2020 


주지하듯 앞서 나열한 형식들은 인스타그램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여타 사용자들의 이목을 효과적으로 집중시킨다. 즉 아르코 미술관에서 진행했던 인스타그램 라이브가 ‘디폴트’의 맥락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난 김나라의 관점을 대변하기 위한 장치로 작용했다면, 본 작업은 애초부터 인스타그램에 최적화하게끔 고안됐다. 그런 의미에서 관객은 “팬데믹 시대의 유령”이라는 프로젝트의 컨셉을 거듭 상기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테면 본 작업을 감상하는 방식은, 대체로 물리적인 환경에 의존했던 기존의 전시 형식에 대한 나름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이 현실의 가치를 폭락시키고 있고, 그에 따라 이제 전시장이라는 플랫폼의 유효성이 상실됐다는 섣부른 결론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의 다양성은 어떻게든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을 수용하기 위해, 우리는 전시장을 무작정 격리하는 대신, 전시장과 병행해 소셜 미디어와 같은 가상의 플랫폼을 보다 능동적으로 운영해야만 한다. 실제로 현실의 가치는 폭락하고 있지만, 오로지 가상 차원에서 전개되는 작업만이 잔존할 것이란 예측을 할 만큼 상황이 마냥 극단적이지는 않다.


그러한 맥락에서 ‘디폴트’라는 가설을 다시금 재고했을 때, 이제 리얼리티는 분명 “가상 차원의 현존”에 의해 좌우되지만, 그와 별개로 사용자는 현실을 아직 완전히 망각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Z’와 마찬가지로 ‘디폴트’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으며, 대다수의 사용자들은 여전히 그것의 도입부에 머물러 있다. 이를테면 <태교 : 도래할 Z에게>라는 작업이 반복해서 ‘Z’를 축원하는 이유는, 작가가 고안해낸 ‘Z’에 부응하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김효재가 전망하듯, ‘디폴트’가 유도하는 사용자 모델로 귀결될 것인가?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섣불리 확언할 수는 없지만, 어찌됐든 일련의 작업들은 분명 사용자가 의지할 수 있는 특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Z’를 발단 삼은 전개에 자연스럽게 편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래가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디폴트’에 대해서 충분히 숙고해야만 성립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이제 ‘Z’를 위한 축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즉 우리에게는 ‘디폴트’의 도입부 이후의 상황에 부합하는 새로운 행위의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괴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괴물”에 잠재된 무수한 컨텍스트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물론 모든 사용자가 반드시 “괴물”이 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김효재의 작업에서 아직까지 그것은 유력한 선택지로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괴물”은 ‘Z’를 경유해 일종의 선언으로 제시됐을 뿐, 어떻게 이후의 작업을 본격적으로 주도할 수 있을지는 다소 묘연해 보인다. 다만 작가가 <태교 : 도래할 Z에게>를 기점으로 오디오 비주얼이라는 매체로 선회하면서, 더 이상 “괴물”의 맥락을 ‘말’로 해설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오디오 비주얼의 시/청각적인 장치들이 형성한 모호한 서사의 구도 속에서 갈피를 잃은 채, 오로지 감각을 매개 삼아 작가의 의도를 구현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디폴트’의 도입부 이후의 상황을 온전히 체감하기 위한 나름의 채비를 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사용자로서 지향해야하는 새로운 행위의 방식은, 현실을 완전히 망각함으로써 맹목적으로 가상의 우위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이 “감각의 채널”을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선취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모든 것이 데이터로 환원되는 세계”에서, 가상과 현실은 분명 감각 차원에서 혼재돼 있으며, 바로 그러한 사실을 자각해야만, ‘디폴트’와 대응되는 “괴물”이라는 개념 또한 성립할 수 있다.


  1. 권시우, <‘디폴트’ 이후의 사용자-주체가 현존하기 위한 가능 세계>, 김효재의 개인전 《디폴트Default》의 도록, 2019 [본문으로]
  2. 권시우, <‘디폴트’ 이후의 사용자-주체가 현존하기 위한 가능 세계>, 김효재의 개인전 《디폴트Default》의 도록, 2019 [본문으로]
  3. 이한범, <신체 없는 목소리와 공간 없는 이야기>, 《호버링 텍스트》, 2018, 33p [본문으로]
Posted by jipdano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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