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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적 미술관

- 차가운 콘크리트와의 포옹을 갈구하며



전민지


* 본 원고는 『건축평단』 2017년 여름호에 수록된 원고를 재게재한 것입니다.

 

 


1.


 어려운 것은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고, 딱딱한 것은 누구에게나 탐탁지 않다. 어려운 동시에 딱딱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2.


 그러한 존재를 몇몇 꼽아보자니, 미술관이 눈에 들어온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술관에 첫 발을 디딜 때, 게다가 그곳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할 때 오는 무력감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분명 반갑지 않은 생경함이 아닌가. 공간 속에 무언가 담아내는, 또는 담아내야 하는 건축물의 필수불가결한 특징을 차치하고서라도 둘 이상의 예술 장르가 각자의 길을 잃지 않도록 서로 다른 평행선을 타야하는 미술관의 본질은 당황스러움에 빠진 인간들을 구출해주지 못한다. 또 다른 구석에서 생각해보면, 건축이라는 예술이 또 다른 장르인 미술을 포괄해야 하는 미술관의 기능이라는 것이 어딘가 어색하기도 하다. 그렇기에 미술관에 던져진 사람들의 몸뚱이는 그저 막막하다. 뇌 곳곳에 숨어있던 뉴런이 작품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을 때, 정작 눈앞이 깜깜해져버린 관람객들은 미술관을 걷다말고 불안함 위로 둥둥 떠다니게 된다. 이쯤에서 미술관이라는 차갑고도 딱딱한 건축물이 두 팔 벌려 안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다면, 조금은 덜 이기적인 것일까.

 

 

3-1.


 만물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면서도 존재의 안과 밖을 동시에 바라볼 수 없는 인간은 눈먼 존재로서의 숙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연유로 몸은 머리가 해내지 못하는 사유를 행한다. 다시 말해 언어로 구성된 복잡한 생각이 해내지 못하는 기능을 오히려 껍데기가 해내기도 한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지각의 현상학>에서 풀어낸 이야기에 따르면, 몸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경험된 의미들의 집합(grouping of lived-through meaning)이며, 세계와의 접합(interface)인 동시에 타자들에게 열려있는 살(flesh)이다. 그렇다면 집합을 이루는 의미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살이 만나게 되는 타자는 누구/무엇인가?

 감히 그것을 특정한 환경에 놓였을 때 느끼게 되는 감각- 그중에서도 굳이 분류를 하자면 촉각과 가까운 감각-이라고 칭해보고자 한다. 시각적으로, 즉 단순히 바라보거나 몇 초간 주시하는 것을 넘어 그 대상을 오랜 시간 응시한다고 하여도 해석이 불가능한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신체가 그 공간에 놓여야만 비로소 받아들여지는 구조가 있는 것이다. 다른 어떤 곳보다도, 미술관의 구조가 그러하다. 언뜻 보면 통유리로 된 벽 한 쪽이 세상과 관람객을 단절시키는 듯해도 오후 두 시에 부서져 내리는 햇빛이 새로운 세상의 입구가 되고, 투박한 석고보드가 오히려 친절하고도 조용히 이야기를 건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뿐만 아니라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보다도 넓게 뻗어나가는 공간감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 미술관에 온 이유를 곱씹어보게 된다. 시야 가득한 자연광과 외벽 표면에 비친 이미지들은 그 경험 또한 생동하게 한다. 이와 같이 그들만의 공간을 생성하고 그곳에 안착하는 과정은 인식의 범주를 넘어선 현상학적 경험으로 이어진다. 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사전지식으로서 명멸하는 팜플렛들을 제쳐두어도, 관람객들이 미술관 건물 내부에서 직면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거대한 서사가 된다.

 목전에 놓인 모든 것이 처음인 것 마냥, 눈을 반짝이며 들어가는 사람들을 포근하게 침전시키는 미술관들이 있다. '전시'라는 평행우주 속의 본업, '건축물'이라는 또 다른 우주의 존재 이유를 모두 포괄하며 인간에게 깊은 포옹을 전달하는 곳들이다. 주변의 빛을 머금은 연못으로 관람객을 초대해 자연스럽게 공간에 녹아들도록 하는 도쿄도현대미술관(東京都現代美術館)을 떠올려보자. 오노 요코(Ono Yoko)에 의해 〈Cloud Piece〉라는 제목이 붙은 창문 너머의 구름은 에드먼드 후설(Edmund Husserl)이 주창했던 현상학적 환원이 그러했듯이, ‘대상에 대한 객관성을 버리고 직접 인식하는 체험이 무엇인지 살갗으로 느끼게 한다. 비정형의 독특함으로 무장해 공간개념의 틀을 깨버린 라빌레뜨 공원(Parc de la Villette)의 파빌리온은 어떠한가. 벽 위로 끝없이 정렬된 직선들이 관람객으로 하여금 미술관의 구조 그 자체에 흡수되도록 한다. 그런가 하면, 베를린의 유태인 박물관(Jewish Museum)에서는 침몰하는 배의 침전을 경험하게 된다. 홀로코스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정신적 탐구가 끝없이 이루어지는 이곳의 기본 구조가 하나의 지그재그 선처럼 보여 개념적인 의미까지 전달하기 때문이겠다. 현상학의 주된 관점은 생활세계’, 즉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상적 삶의 문맥에 있다. 그렇기에 역사적 비극으로 인해 끊기고 만 시대의 선을, 시의성 있는 공간에서 다시금 기억하는 것은 의도된 바보다도 어렵지 않다.

 

 

3-2.


 인간의 감각이 스스로 무언가 흡수할 준비를 마쳤다면, 바로 그때 미술관의 관람객들은 모든 것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게 된다. , 건물의 정중앙에 서 있는 관람객에게 미술관 벽과 천장이 이야기를 속삭이는 과정은 결국 미술건축이라는 두 가지 예술 장르가 인간에게 가까워지는 방법으로서 가장 유효한 것이기도 하다. 미술관이 지어지는 과정에 몸과 살갗이 작게나마 숨어있다면 이전의 미술관이 차지하던 높은 지위는 박탈당하고, 유미주의에 갇힌 성전으로서의 미술관 또한 금세 녹아내리게 될 것이다.

 고뇌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고뇌하는 공간을 바라본다. 그와 동시에, 인간의 발걸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미술관의 공간이 그들을 바라본다. 비록 미술관의 탄생은 제국주의 및 서구중심주의와 평행선상에 있을지라도, 시민의 참여와 커뮤니티와의 소통 및 협업이 중시되는 오늘날 미술관의 발전 방향을 생각해본다면 미술관은 그 자체로 고뇌의 주체이다. 이처럼 그 역할이 크나큰 변화를 겪게 된 공간에서 몸과의 관계를 고찰해보는 것은 굳이 후설이나 메를로-퐁티를 인용하지 않아도 명백한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인간에게 다가가는 미술관의 파티션들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공명을 일으킨다. 공진하는 고요함 속에서, 시공간으로부터 해방된 미적 관조를 불러일으키는 건축물은 마치 인간과 같은 사유를 지속한다. 그 결과로 우러나오는 진실성은 관객과 두 갈래의 예술을 동시에 가깝게 할 수밖에 없다.

 

 

4.


 결국 예술이 별거냐, ‘이들 예술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말하는 미술관 건물 자체가 예술이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에 의한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몸을 내어주며 대화를 시도하는, 그리하여 사람들을 가득히 안을 줄 아는 미술관을 찾으려 한다. 그것은 유서 깊을 필요도, 최첨단일 필요도 없다. 그저 친절하고 어렵지 않게 대화와 포옹을 선사하는 곳이라면 마냥 기쁜 곳이 될 테다. 세계 안에 체화된 존재의 경험을 극대화하라고 했던가. 은빛의 스틸이 인간과 공유하는 것을 찾으라면, 그것이 곧 미술관일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들의 철학이 결합을 이루어 콘크리트 위에 흩뿌려질 때, 이 과정이 미술관이라는 존재를 스스로 풍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관람객은 놀랄 수밖에 없다. 어렵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기에

Posted by 황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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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연, 마음의 흐름에 대한 단상 : 에세이, 무빙 이미지, 노스텔지아

 

권시우

 


사물보다 큰 설치 전경


 남화연의 개인전 마음의 흐름은 분명 최승희라는 과거의 안무가를 중요한 전제로 삼지만, 그녀에게 쉽사리 종속되지는 않는다. 특히나 전시장의 2층에 설치된 영상 작업 사물보다 큰(2020)에서 최승희의 존재는 묘연하다. 해당 작업은 남화연과 (일본에 상주하고 있는 작가의 친구인) 히로후미가 주고 받는 서간 왕래를 토대로 전개되는데, 정작 서간의 내용에서 최승희를 언급하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잠깐 앞선 문장에서의 언급이라는 표현에 주목해보자. 즉 최승희와 관련된 이야기는 작중의 내레이션의 일부일 뿐, 결코 이미지 차원에서 구현되지 않는다. 일종의 파노라마처럼 연결된 4채널의 영상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때로는 서로 교차하면서 제시되는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어느 바닷가의 풍경이다. (추측컨데, 일련의 클립들은 히로후미의 현재 거주지인 스지라는 작은 섬에서 촬영된 것 같다.) 영상의 중반부 이후, 남화연은 히로후미에게 보내는 답장에서 파도의 흐름, 무엇보다 광대한 바다로부터 지금 여기에 도달한 파도에 잠재된 시간에 대해서 자문한다.

 

 한 인간으로선 쉽사리 가늠할 수 없는 과거와의 간극. 달리 말해 사물보다 큰에서 최승희는 작가가 현재로 떠밀려온 과거에 대해 반추하는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연상된 흐릿한 기억의 단편에 불과하다. 그러한 영상의 개요는 남화연의 작업에 대해서 자주 언급되는 시간이라는 모티프를 상기했을 때, 별로 새삼스럽지 않다. 심지어 전시의 서문에서 김해주는 시간은 남화연 작업의 주재료이자 주제이다.”라고 직설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중요한 것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시간에 대해서 자문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나에게 뒤이은 질문은 이런 것이다. 남화연은 시간을 작업의 주재료이자 주제로 삼아, 어떤 정서적인 경험을 연출하는가? 이를테면 사물보다 큰이 유도하는 정서는 지극히 문학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이때의 문학이란 매우 통속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그것은 서정시를 대변한다. 많은 사람들이 (문학과 유/무관한) 특정한 텍스트에 대해 부연하는 과정에서, 굳이 문학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해당 글이 독자의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동요시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화연은 줄곧 문학적인 제스처를 취하되, 결코 문학이라는 매체를 실험하지는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사물보다 큰이라는 영상 작업을 주도하는 내레이션은 마치 서정시를 연상시킨다. 애초에 서간의 형식은 문학의 특정한 장르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그러한 효과는 작중에서 극대화된다. 얼핏 내레이션은 단순히 이미지와 병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련의 클립들을 견인하는 것은 전자이고, 결국 이미지는 (내레이션으로 대변되는) 텍스트의 삽화처럼 보인다. 무빙 이미지에서 이미지가 그저 삽화로 기능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물론 무빙 이미지라는 매체는 단순히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장치들을 포함하지만, 해당 작업이 연출하려는 정서적인 경험을 좌우하는 권한이 텍스트에게 부여된다면, 은연중에 무빙 이미지의 시각적인 차원은 소외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남화연이라는 작가의 결격 사유가 될 수는 없다. 주지하듯 남화연은 비단 영상 작업 뿐만 아니라, 그것에 함의하는 서사(혹은 서사적인 모티프)를 영상의 외부에서 제시하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운용하며, 그러한 전제는 본 전시에서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물보다 큰을 독립적인 작업으로 독해했을 때, 작가가 의도한 서정성(앞서 언급한 의미에서의 통속적인) 문학에 귀속된다는 사실은, 결국 무빙 이미지라는 매체를 충분히 숙고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는 에세이 필름에서 파생된 하나의 경향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에세이 필름은 영상 차원에서 구현할 수 있는 (픽션과 논픽션 같은) 다양한 형식과 장르들을 작업 내에서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단으로 삼는다. 그런 의미에서 해당 작업은 텍스트 차원에서 서술된 (서정시를 기반으로 하는) 에세이지만, 그와 별개로 섣불리 에세이 필름으로 호명할 수는 없다. 물론 (무성 영화에서의 서브 타이틀subtitle에서 비롯한) 영상과 문학 사이의 접점에 대한 역사는 유구하다. 그러나 무빙 이미지는 반드시 문학이 될 필요가 없으며, 만약 누군가가 그러한 필요성을 느낀다면, 단순히 통속 문학의 정서와 방법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무빙 이미지와 동시대를 공유하는 문학에 잠재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수렴해야만 할 것이다.

 

 무빙 이미지 작가들은 언제까지 에세이스트Essayist를 자처해야만 하는가? 물론 사물보다 큰의 편집 리듬은 (내레이션의 전개를 굳이 위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체로 유려하다. 심지어 영상의 중반부 이후에, 중앙에 배치된 두 개의 채널이 미묘한 시차를 두고 동일한 내레이션을 반복 상연하는 식의 트릭은 과거로부터 수신된 메시지라는 소재를 거듭 곱씹게 만든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시도만으로 본 작업이 결국 에세이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무효화할 수 있을까?

 

 한때 현대미술에서 통용됐던 텍스트성과 별개로, 생각보다 국내의 많은 작가/예비 작가들이 자신의 사적 경험을 고스란히 반영한 소위 일기장작업을 재생산하고 있다. 물론 사물보다 큰의 서사, 즉 두 화자가 주고 받는 서간들이 실제라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독해이며, 설사 실제라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과거에 대한 일종의 알레고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극중에서의 서간이 주로 내적 독백의 형식으로 발화되면서, 은연중에 가상의 일기장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비판의 지점이라기보다, 남화연이 시간과 연루된 특정한 소재를 다루는 고유한 방법론에 가깝다. 즉 통상의 일기장작업과는 달리사물보다 큰에서 사적 경험은 극중에서 언급하는 최승희와 같은 공적인 인물들에 대한 기록 내지는 기억과 얼마간 혼재돼있다. (이는 화자의 역할이 히로후미에서 남화연으로 전환된 이후 점차 명확해진다.) 달리 말하자면, 남화연은 작업 외적으로 오랫동안 최승희에 대한 아티스틱 리서치를 진행한 결과, 최승희를 역사적인 인물로 대상화하기보다, 최승희와 관련된 일련의 기록을 얼마간 체화하고 있다. “기록 내지는 기억이라는 표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본 작업은 라는 개인의 관점에서 의도적으로 역사를 희석시킨다. 혹은 기록이라는 (객관적인) 형식을 (주관적인) 기억으로 범주화함으로써, 비로소 지나간 모든 시간들을 포괄하는 과거에 대한 발언권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다시 한, 무빙 이미지 작가들은 언제까지 에세이스트Essayist를 자처해야만 하는가? 무빙 이미지에서 유독 에세이라는 형식이 문제시되는 이유는, 이미지가 (스크립트로 대변되는) 텍스트와 너무도 정합적이거나, 텍스트의 맥락과는 달리 지나치게 무작위하기 때문이다사물보다 큰은 전자에 가까우며, 아마 후자의 사례는 김희천의 바벨(2015) 이후에 등장한 수많은 아류작들이 아닐까 싶다. 어찌됐든 중요한 것은 양자 모두 이미지자체가 연출할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를 섣불리 유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기존의 촬영이나 편집의 관습 등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빙 이미지에서 이미지가 과연 조형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을 (작가가 할당한) 시간 내에서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의사-시네마를 표방하는 영상 작업들이 전시장 혹은 블랙박스에서 관객을 향해 일방적으로 상연(혹은 구술)되는 상황은 이미 클리셰가 돼버린 지 오래다. 그런 의미에서 사물보다 큰은 여전히 (설사 일기장작업을 지향하지 않더라도) 에세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주지하듯 그러한 사실은 작가에 대한 기소장이 될 수 없다. 남화연이 굳이 에세이스트를 자처하는 이유는 애초에 작가가 표방하는 작업의 방법론이 문학에 귀속돼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결국 작가에게 영상이라는 매체는 에세이 차원에서의 서정성을 배가하기 위한 시각적인 표현 도구에 가깝다. 그러한 사실을 얼마만큼 의식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본 작업을 넘어 마음의 흐름이라는 전시 전반에 대한 맥락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를테면 3층에 설치된 최승희와 관련된 기록들을 포함한 일련의 작업을 살펴보자. 최승희라는 인물을 소실점 삼아 구현된 전시장의 전경은 얼핏 사물보다 큰에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역사를 희석시킨 방식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3층은 일종의 아카이브 룸Archive Room으로 기능하며, 관객은 그 안을 배회하는 과정에서 최승희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때의 정보는 통상의 아카이브가 제공하는 것과는 달리 굉장히 불확실하다. 앞서 3층을 아카이브 룸으로 호명했지만, 이는 모든 작업이 소위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물보다 큰에서 확보한 과거에 대한 발언권을 토대로) 남화연이라는 개인으로부터 파생된 유사 기억들을 전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승희의 안무를 모티프로 삼아 새롭게 창작한 퍼포먼스에서 과거의 신문에서 발췌한 스크랩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작가가 지금까지 최승희라는 인물을 나름의 방식으로 체화해온 궤적을 그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3층은 다소 두서 없는 기억의 아카이브나 다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본 전시는 한국근대무용의 근간을 만들었다는 최승희라는 인물을 장구한 역사의 계보 속에서 명시하지 않는다. 동일한 인물을 소재로 삼은 극장 퍼포먼스 이태리의 정원(2012)을 발단 삼은 최승희에 대한 집요한 관심은 도통 의도를 종잡을 수 없지만, 그와 별개로 본 전시에 이르기까지 소요된 일련의 시간은 작가와 최승희를 어떤 식으로든 매개한다.

 

 결국 남화연의 관점에서, 3층에서 제시된 아카이브는 최승희를 포함한 우리의 것이나 다름없다. 달리 말하자면, 일련의 (객관적인) 기록을 체화한 작가는 어느 시점부터 최승희와 (주관적인)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 이로써 한 인간으로선 종잡을 수 없는 과거와의 간극은 일시적으로 망각된다. 지나치게 낭만적인 언사로 들리지만, 내가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그러한 부분이다. 본 전시에서 남화연은 최승희와 지속적으로 동화하려고 시도할 뿐, 역사 혹은 역사적인 인물을 사유思惟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픽션의 등장인물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있는 독자처럼 보인다. 실제로 최승희라는 과거의 인물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들은 대부분 유실되어 불완전하게 남아있을 뿐이며, 이때 발생하는 시간의 공란은 그녀를 섣불리 역사의 계보에 위치시킬 수 없게끔 만든다. 작가는 시청각에서 진행됐던 전시 《임진가와》(2018)에서 유추할 수 있듯, 언제나 (우연찮게 맞닥뜨린) 특정한 소재에 잠재된 시간의 공란에 매료됐으며, 그로부터 파생된 파편적인 기록들과 그 사이의 간극들을 추적하는 일을 작업의 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나 앞선 과정은 결코 복원의 과정이 아니라, 다만 시간의 공란을 현재의 관점에서 수용했을 때, 어떤 새로운 내러티브가 전개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모의실험에 가깝다. (불완전한) 역사는 픽션이다. 혹은 픽션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단언했을 때, 역사 혹은 역사적인 인물은 가까스로 지금 여기에서 현전할 수 있다.       

 

 그러한 맥락은 남화연이 구사하는 에세이의 방법론을 얼마간 정당화시킨다. 본 전시, 특히나 3층의 아카이브 룸은 최승희라는 픽션을 (주관적으로) 편찬한 결과로서, 모든 작업 및 자료들은 결국 남화연 개인의 기억으로 범주화된 채 다소 두서없이 나열된다. 즉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복기하면서 전시 차원에서 일종의 에세이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앞서 언급한 소위 문학적인 뉘앙스가 아카이브라는 형식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혹은 문학적인 뉘앙스에 의해 불완전한 역사는 단순히 신뢰할 수 없는 아카이브로 방치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경험을 유도할 수 있는 새로운 내러티브로 거듭난다. 과거와의 간극을 극복하기 위한 작가의 지속적인 노력은, 역으로 관객에게 과거가 얼마나 아득한 곳에 위치해있으며, 우리의 현재 또한 언젠가 시간의 흐름에 휩쓸린 채 그곳으로 떠밀려갈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암시한다. (본 전시에서 과거와 현재는 픽션에 의지해 가까스로 봉합돼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3층에 산개한 기록 내지는 기억들은 자신들의 헐거운 관계를 의도적으로 노출하면서, 관객에게 픽션에 대한 믿음을 굳이 강요하지 않는다.)  

 

 분명 사물보다 큰에서 화자의 역할을 맡으면서 줄곧 유지했던 1인칭이라는 전제는 3층에 이르러 우리라는 복수의 존재, 혹은 두 인물의 기록/기억이 모호하게 공존하는 다소 분열적인 존재로 환원된다. 달리 말해 본 작업은 에세이의 도입부로서, 독립적인 영상 작업이라기보다 (작업의 외부에서) 작가가 최승희를 어떻게 자신의 일부로 기억하고 있는지 환기하는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 그런 의미에서 남화연을 섣불리 무빙 이미지 작가로 호명하는 것은 곤란하다. 주지하듯 본 작업이 여전히 텍스트에 의해 주도된다고 했을 때, ‘이미지가 에세이를 위한 시각적인 표현 도구로 남용됐다는 사실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이제 작가가 전시 차원에서 구사하는 에세이라는 방법론을 얼마간 납득할 수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본 전시에서 사물보다 큰이 점유하고 있는 포지션은 (그것의 물리적인 스케일과 무관하게) 지나치게 협소하다. 1인칭 화자를 내파하기 위한 작업 혹은 전시 차원의 발단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왜 굳이 영상이어야만 하는가? 혹은 에세이스트가 자신의 의도를 배가하기 위해 굳이 삽화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앞서 제기한 질문들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면사물보다 큰에서 이미지는 삽화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종의 장식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는 비단 남화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굳이 에세이를 서술하려는 모든 작가/예비 작가들에게 해당된다. 물론 장식적인 이미지는 그 자체로 유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빙 이미지에서 이미지를 소외시킨 결과에 불과하다면, 나는 언제든지 그에 대해서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다른 한편, 최근 국내의 미술계에서 자주 발견하게 되는 문학적인 뉘앙스는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마음의 흐름》에서 작가가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과거와의 간극은 일종의 노스텔지아Nostalgia를 전제하고 있는데, 이를 토대로 서술되는 에세이는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거듭 현재를 유예하고 있다. 이때의 현재란 단순히 우리가 속해있는 특정한 시간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성이 와해된 이후, 암묵적으로 동결된 현대미술의 공론장을 의미한다. 물론 모든 작업 혹은 전시가 공론에 기여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통속 문학의 정서에 의지한 채 미술을 오로지 감상적으로 소비하거나, 그럴듯한 시적 어휘로 포장하기에 그친다면, 현재에 대한 사유思惟는 무마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와 관련해 세실극장에서 개막한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의 연계 심포지엄인 〈큐레이터로서의 큐레이터의 한 장면을 상기하게 된다. 국내의 미술계에서 발생했던 소위 거대 담론의 흥망성쇠를 논의한 이영철과 김장언의 발제 이후, 현시원은 마침내 현재를 거론하면서, 최소한 자신은 큐레이터로서 셜록 홈즈의 시선으로 우연찮게 맞닥뜨린 사물이나 장소에서의 미시적인 경험을 집요하게 좇고 있다고 상술했다.[각주:1] 즉 동시대의 폐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미시적인 경험을 모티프 삼아 일련의 사건을 발생시키는 것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때의 사건은 대체로 에세이의 형식으로 귀결되며, 반드시 노스텔지아를 전제하지 않더라도, 현재를 그저 사소한 경험의 파편들로 환원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소한 경험의 파편들을 공유하면서 형성한 네트워크는 일종의 취미 공동체로서, 동시대의 폐허를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활보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이를테면 시청각 문서와 같은 텍스트가 한때 다양한 개인의 정서와 미감 등을 효과적으로 반영하면서 일상 차원의 활력을 부여했던 것처럼. 그러나 현재가 그저 개개인의 일상들을 매개로 기록 혹은 서술되는 데 그친다면, 우리가 잃어버린 공론은 갈수록 묘연해질 수 밖에 없다. 노스텔지아의 관점에서 현재를 유예하건, “미시적인 경험을 경유해 현재를 축소하건, 지금까지 국내의 미술계에서 (문학 자체가 아닌) ‘문학적인 뉘앙스를 지향했던 대부분의 시도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 즉 더 이상 공론으로 삼을 만한 의제가 부재한 상황을 계속해서 우회해왔다. 동시대의 폐허는 과연 언제까지 유희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이제 셜록홈즈처럼 사소한 일상의 파편들을 좇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출구를 모색해야 될지도 모른다. 혹은 출구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채,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공론을 재개하거나. 물론 에세이라는 형식은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만약 모두가 에세이스트를 자처한다면 현재의 시간은 한 개인의 지엽적인 시야 내에서 공회전을 거듭할 뿐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억의 아카이브를 빠져나왔다.


  1. 참고로 <큐레이터로서의 큐레이터>에서 현시원이 언급한 “셜록홈즈”는 개인의 취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사 연구에서 통용되는 가추법abduction의 맥락에서 연원한다. 가추법이란 “가설을 세우거나 규칙, 결과를 통해 어떤 상황을 추리하고 논증하는 방식”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관찰된 ‘사소한 것’은 (거시적 관점과는 다른 경로로) “세계의 큰 이미지”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로 작용한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링크 참고. 권성수, 「사회학자가 셜록홈즈에게 배워야 할 것들」, 리뷰 아카이브, 2016. http://www.bookpot.net/news/articleView.html?idxno=685 [본문으로]
Posted by 황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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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5.19 16:10 우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파"가 무슨 뜻인가요?


좋은 아이디어를 위한 절반의 마법

황재민

 


전시 Vera Verto: Why are Digital Kids Painting Again? Because They Think It’s a Good Idea》 포스터



 전시 Vera Verto: Why are Digital Kids Painting Again? Because They Think It’s a Good Idea(이하 Vera Verto)의 제목을 옮기면 베라 베르토: 어째서 디지털 키즈들은 다시 회화를 그리기 시작했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로 풀이된다. 부속된 긴 소제목은 비평가 얀 베르워트의 글로부터 인용한 것으로, 원문의 ­­­­제목은 어째서 개념주의 예술가들은 다시 회화를 그리기 시작했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주석)이며 2005년쯤 쓰였기에 얼마간 시차를 갖는다. Vera Verto를 기획한 김나현은 구문­­을 살짝 바꿔 좋은 아이디어로써 쓰이는 회화, 그리고 회화가 갖는 의미를 2020년으로 옮겨 놓는다. 여기에는 물론 회화가 여전히 좋은 아이디어로 작동할 수 있다는 잠정적 판단이 선행된다.

 

 회화는 의미를 잃었다가 되찾으며, 낡은 것으로서 새롭게 주목받는다. 얀 베르워트가 글을 통해 진단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상황으로, “어째서 개념주의 예술가들은 다시 회화를 그리기 시작했는가?” 라는 제목의 글은 회화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반복되고 소모된 주제에 대한 보충에 속한다. 이제 회화가 죽었다 깨어나는 과정은 누구에게든 익숙한 서사처럼 보인다. 예술 생산의 양식과 방법이 변화하는 특정 구간 회화는 죽는다.’ 예술이 동굴을 탈출했을 때, 사진이 발명됐을 때, 미국산 후기 모더니즘의 평면성 신화가 무너졌을 때. 하지만 회화는 언제나 다시 등장하고 그것은 더는 놀라운 일도 되지 못한다.

 

 회화는 전통적 예술 생산의 상징물로서 아직 특수한 지위를 갖는다. 다른 매체가 무관심 속에서 잊힐 때 회화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죽는다. 이것은 동시대 미술의 갱신된 논의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후기 모더니스트 미술 이론의 적극적인 지지체로서 회화가 담당한 역할은 바로 그 이론이 폐기되고 기각된 이후에도 얼마간 영향을 지녔다. 모더니스트 미술 이론이 나름의 유효성을 다한 뒤에도 회화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매체는 항상 의심 속에서 다시 검토되었는데, 이를 더 자세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 역사적 견해 뒤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충돌하고 있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만일 회화가 정말 아직도 문제적인 양식이라면, 이것을 무엇으로, 또 어떻게 취급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는 게 당연하다. 이를테면 회화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회화는 모더니즘의 상징이자 권위였다. 모더니스트 도그마를 거부한 것이야말로 지난시기 미술이 거둔 중요한 성과 중 하나였는데, 이를 흘려보내는 것은 역사를 되풀이하는 낭비다. 모더니스트 이론이 가진 유효성이 사라진 뒤 일반화된 개념주의적 전환(Conceptual turn)’은 회화 매체가 독점했던 미적 매체의 선택지를 확장했다. 이때 매체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단순한 뜻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특정 매체로 귀결될 수 있는 미적 생산의 프로토콜이 새로이 설계되었으며, 결과값으로 작동하는 매체 역시 해당 프로토콜과 유의미한 연관을 맺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념주의적 전환이후 회화가 쉽게 선택될 수 없었던 이유는, 과정을 독점하는 결과값으로서 유연하게 반응하기 어려운, 무거운 매체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의견 역시 존재한다. 만일 필연적 과정을 지니며 특정성을 얻었다면, 회화가 회화로서 작동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더불어, 회화를 단순히 기각하는 것 역시 낭비에 속한다. 물질적 근거를 지니는 예술 양식을 이론의 부속품으로 여길 때, 비언어적 예술로서 미술이 갖는 미덕은 사라진다. 나아가 지나치게 담론화되기 시작한 동시대 미술의 논의 속에서 언어가 매체에 앞설 때 발생하는 부작용이 존재한다. 담론적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레디메이드 예술은 언제나 주어진 토큰을 차지하며 자리를 잡고, 기관과 시장은 토큰을 제공하며 프레임을 잡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결국 매체를 매체 자체로 이해하지 못할 때, 예술은 예술을 위한 판단 기준의 힘을 예술 바깥의 기관에게 이양하며 힘을 잃는다.[각주:1]

 

 이처럼, 적극적 상징으로 갖는 힘을 잃은 뒤에도, 아니 오히려 힘을 잃었기 때문에, 회화는 여전히 논란을 촉발하며 문제를 일으킨다. 회화가 만일 좋은 아이디어로 작동할 수 있다면 그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회화 매체는 담론과 역사적 층위를 안고, 부정성과 긍정성을 내포하기에 임의적이고 중간적이며 그러므로 모호하다. 모호성이란 여전히 좋은 재능으로 취급된다. 미적 권위를 떠안은 매체로부터 모호함을 지닌 매체로 거듭날 수 있었다면, 예술의 상징으로부터 기각된 회화의 지위 역시 아쉬운 일만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담론의 차원에서, 회화가 언제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마스터키 취급을 받는다는 건 결국 무엇을 뜻할까? 온갖 나쁜 아이디어와 결함 있는 실천으로 가득한 미술에게 모호성이라는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는다는 것은, 그러니까 게임의 규칙에 끼지 못한다는 말은 아닐까?

 

 회화를 둘러싼 게임의 규칙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이제 한 가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또 있다. “어째서 디지털 키즈들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가?”라는 전시의 질문은 원문에서 인용된 개념예술가라는 위치를 현재화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수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어째서 디지털 키즈들은 새로 그림을 그리는가? 어째서 회화는 여전히 가능하며, 회화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모호성을 재창출하는가? 이 질문은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코드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전자매체가 일상화되고 인터넷을 매개하는 디지털 디바이스가 개인화(Personalization)된 이후, 이 조건은 시각 예술을 위한 새로운 개념적 지지체가 된 것 같다. 모든 물질은 이미지화되어 네트워킹되지만, 동시에 별개의 스크린에서 개인화된다. 이것은 이미지를 조작하고 거느릴 수 있다는 감각을 만들며 이미지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한다. 그리고 바로 이 새로운 감각을 경유하여, 디지털 디바이스와 회화 캔버스의 형태적 동형성은 효과적으로 겹쳐진다. 여기서 디지털 키즈가 회화와 스크린을 겹치는 재주를 부리며, 확장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다는 서사가 가능해진다.[각주:2]

 

 하지만 위에서 충분히 검토했듯, 회화를 둘러싼 담론적 지형에서 확장이라는 문제는 항상 복잡하고 중요하다. 회화가 캔버스를 떠나고 벽을 떠나 여기저기에 놓일 때, 그러면서도 모종의 회화적임을 고집하고자 할 때, 회화는 당위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스크린의 자율성이 캔버스의 자율성 위로 겹쳐질 때, 확장은 너무 당연스럽게 허용되는 것 같다. 디지털 환경이 이미 우리의 시각성을 굴절시킨다는 가정 아래 회화의 임시적인 가능성은 매체적 확장과 착각되며 의아한 권능을 만들어낸다. 어떤 시점에서 캔버스는 여전히 이미지를 위한 지지체이고 스크린 역시 그렇다. 그러나 회화는 캔버스와 이미지의 결합물 이상의 담론적 현상이며 그러므로 스크린과 단순히 겹쳐질 수 없다. 스크린-캔버스의 동형성은 어느 정도 착각이며 이를 긍정하기 위하여 지각 이상의 담보가 요구된다.

 

 근대적 권위의 상징으로부터 잘못 설정된 디폴트 값으로, 진보하는 형식으로부터 안정적인 제한으로, 회화가 거쳐야 했던 몇 가지 전환은 자못 드라마틱하게 보인다. 회화가 갖는 모호성을 수긍하고 긍정하는 것은 회화를 사용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되며, 스크린과 캔버스의 동형성을 긍정할 때 그것은 어쩌면 시의성까지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회화의 모호성을 수긍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 결국 사변적 힘을 강조하거나, 혹은 매달리는 일로 나타난다. 매체성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매체성이 결국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도외시해야 한다. 이와 같은 한계 아래에서, 회화는 이제 딛고 움직일 수 있는 발판이 아니라 차라리 과속방지턱과 같은 것으로, 행동을 제한하고 움직임을 통제하며 정지를 권유하고, 그것으로 조형적 순간을 연출하려 하는 제한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 만큼 회화를 주제 삼아 유효한 미적 상황을 펼쳐내는 건 어느 정도 불가능하고 이루기 어려운 과제처럼 느껴질 지 모른다. 이를테면 거의 마법에 가까운 무언가처럼.

 

 《Vera Verto에서 마법은 중요한 소재가 된다. 제목인 베라 베르토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문인데, 지팡이로 컵을 날카롭게 세번 두드리고 대상을 향해 지팡이를 겨눠 베라 베르토를 정확하게 발음하면 대상이 된 동물을 유리잔으로 바꿀 수 있다. 전시는 주문의 출처를 밝히면서, 하나의 이미지를 제안한다. 그 이미지 속에서 주문은 성공한 것도, 실패한 것도 아닌데, 희생된 생쥐는 절반은 제 몸을 유지하고 있지만 반은 유리잔이 된 채 멈춰 있다. 완전히 폐기된 것도 아닌, 유효하게 작동하는 것도 아닌 회화와 같이, 그것은 절반쯤 우스꽝스럽고 절반쯤 문제적이다.

 

 우습고 문제적인 쥐-유리잔의 심상은 회화를 일종의 마법으로 되돌리려는 사변 실험이 가능할까?’라는 자문의 자답처럼 보인다. 마법이란 인간 지각과 경험이 생생하게 살아있던 시절의 인식 체계로, 쇠퇴한지 오래되어 감각이 어려운 골동이다. 그렇기에 마법을 소환하는 미적 실험은 어쩔 도리 없이 기만적이다. 더군다나 마법의 형태 자체도 문제다. 비인간 생물의 형태를 사물로 희화하는 마법은 옳지 않을 뿐더러, 논리적이지도 않다. 만일 마법이 정말로 선험적인 자연 질서의 일부였다면 이토록 인간 중심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베라 베르토의 주문은 마법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마법은 기술에 의해 잉여가 된, 영적인 동시에 세속적인 형태의 근세적 염원이며, 인간적 서사 바깥을 쉽게 넘지 못하는 부속이다. 전시는 마법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언급하며, 회화가 지녔던 사라진 과거와 근대적 권능을 상기시키려 애쓴다. 하지만 마법은 해리 포터라는 서사적 카테고리 안에서 제한되며 회화는 예의 모호성 안에서 제한된다. 마법이 회화를 부활시키지 못하듯 회화는 마법을 소환하지 못한다. 이 이중부정은 그 자체로 전시의 주제가 된다.

 

 마법에 대한 요구는 특히 박제호의 작업에서 노골적이다. 우리는 마법을 기대한다라는 제목의 연작에서, 화면은 우연적인 필치가 빗는 추상적 형상으로 덮인다. 여기서 우연이란 다름아닌 마법을 위한 것이고, 그러므로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작가는 회화에 집약된 물신적 판타지를 말한다.” 판타지는 회화가 오래 전 잃어버린 것인데, 그렇기에 이것을 제대로 말하기 위해서는 판타지를 잃어버리기 직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박제호는 마법이 탈-마법화되던 시기, 주술과 영화가 분리되기 직전의 시기로 돌아가 망령을 호출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박제호의 화면에서, 우연은 붓질의 몫이 아니라 스크래치의 몫이다. 작가의 회화에서 붓질은 거의 드러나지 않게 뭉개지지만 가는 선으로 판 음각은 두드러진다. 거의 자동기술적인 것으로 보이는 음각의 선은 회화 표면에서 모종의 물질성을 상기시킨다. 마치 비석처럼, 혹은 석고판처럼, 음각의 긁힌 자국은 착시를 만들며 고딕적 정동을 소환한다. 이 착시는 단지 표면에서 멈추지 않고 지지체 차원으로 확장된다. 작업 중 석고 캔버스연작은 실제 석고를 캔버스 형태로 만져 전시한 것으로, 작가는 석고의 물성을 물감의 그것과 같은 차원에 두고 취급한다. 비석과 같은 석고의 물성은 그 자체로 과거를 끌어들이는 조건이다. 추상에 가까운 화면 속 유일하게 형상에 가까운 가고일은 종종 뚜렷하지만 종종 흐릿하게, 하지만 분명히 반복적으로 존재하는데, 이것은 박제호의 추상 속에서 형상적인 것을 찾도록 만드는 원인이 된다. 추상 속에서 언뜻 보이는 형상을 찾으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복고적인 것이다.

 

 석고와 캔버스 사이에서, 추상과 형상 사이에서, 그리고 마법과 현실 사이에서, 회화는 모호성을 최대한 방치한다. 무풍지대, 그리고 가고일이라는 제목의 작업에서 박제호는 무빙이미지를 LCD 스크린에 상영하고, 이를 캔버스 사이에 함께 병치한다. 이때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이미지는 거의 정지된 것처럼 느리고 흐려서 무의미한 움직임을 만드는 듯 지지부진하다. 여기서는 스크린을 회화를 위한 새로운 매체로 제시하려는 야심보다는, 큰 기계를 깎아 돌도끼처럼 사용하는 듯한 연극적이고 의도적인 착각이 읽힌다. 박제호는 회화에 기대를 투영하고, 그것이 잊힌 것을 되살리고 복구하여 마침내 과거라는 신선한 땅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 적절하게 투사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와 효과가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비밀에 붙인다.

 

 한 편 이연석의 작업에서, 확장은 좀 더 중요한 주제가 된다. 작가는 회화를 일종의 사물로 파악하고 나아가 상품의 상태를 받아들인다. 여기서 물신의 논리를 굳이 인용하고 긍정하는 것은 회화를 둘러싼 구태의 담론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제스처로 파악된다. 이연석은 전시된 작업 중 대부분의 제목을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의 영화 《카운슬러(The Counselor)(2013)의 대사에서 가져오는데, 이것은 결국 의미가 담기는 제도적 근거를 무의미로 회피하는 일이고 회화가 지시할 수 있는 모호성을 충분하게 활용하는 일이다.

 

 이연석의 회화는 기존재하는 상품 택을 붙인 채 두껍게 걸리고, 또 붓질로 뒤덮인 불균질한 표면 대신 미디엄이 깨끗하게 발린 균질하고 반질거리는 표면을 갖는다. 입체성을 강조하는 캔버스의 두꺼운 측면이나 투명하고 평평한 표면은 그 자체로 사물의 상태를 지시한다. 이것은 대단히 의도적인 것이지만, 굳이 상품이 되려는 미술의 장난스러운 악의가 과연 지금도 유효한지 하는 일은 다시 한번 질문되어야 한다. 그러나 작업의 반질거리는 표면 뒤에서 붓과 물감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투명하게 엿보이고, 미디엄 뒤에서 크랙이 간 표면이 모종의 물성을 가리킬 때, 상품의 상태를 부연하는 작가의 논리는 조금 흐트러진다. 표면이 갖는 매끄러움은 사물을 위한 것이지만, 이것은 너무 투명하기에 그 뒷편에 위치한 회화적 상황을 숨기지 못한다.

 

 나아가 몇몇 작업은 전통적인 회화의 구성을 충실하게 이행하기도 한다. 이연석은 ‘triptych panel’ 연작에서 세 개의 큰 캔버스를 일종의 삼면화처럼 제시하고, 그 위에는 단순한 정사각형 추상을 마치 성화(Icon)처럼 올려 둔다. 삼면화 중 어두운 단색의 화면을 갖는 triptych panel 1》과 《triptych panel 3》은 양 옆에 놓이고, 단순한 풍경처럼 보이는 triptych panel 2》이 가운데를 차지한다. 가운데 놓인 triptych panel 2》는 언뜻 보면 풍경화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어떤 풍경과도 일치하지 않는 모양이다. 작가는 이 그림이 워낙 얇게 칠해져 옮기는 중 쉽게 상하기도 하고, 그에 따라 다시 칠해야 할 때도 있다고 부연하는데, 이처럼 자주 다치고 까지는 얇은 물감은 형상을 의도치 않게 바꾸는 원인이며 풍경을 오작동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 모호성 속에서, 구상은 거의 추상에 가까운 것으로 착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형상은 형상이다. 전시된 작업 중 but there is no perfect diamond As my father would say는 예의 얇고 흐린 붓질이 특정 도상에 집중된 사례다. 널찍한 캔버스 중앙에 약하게 자리 잡은 도상은 무척 흐리기에 그 어떤 형상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누구든 이 그림을 본다면 《최후의 만찬(Ultima Cena)》의 그리스도 도상을 즉각 떠올리며 여러 맥락을 상기하게 된다. 이미지의 힘은 아무리 미약해도 아직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은 여전히 회화가 상대해야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이연석은 회화 캔버스의 물성을 부각시키며 사물과 비슷한 상태를 연출하고, 그것을 상품과 연관된 논의 안에 배치하지만, 오히려 몇몇 작업에서는 이미지를 다루는 방법이 부각되는 것 같다. 작가는 사물을 선포하고 이미지를 불특정하고 아슬아슬하게 표현하면서 거의 말하지 못하도록 막지만, 이것은 결국 이미지가 회화 안에서 여전히 갖는 다양한 힘을 충실하게 강조하는 결과로 마무리된다. 다만 역설적인 것은 the cult seems big》이나 《the gridle comes out crooked》 등, 머리 위에 놓인 성상 같은 추상을 볼 때, 표면 위 추상 이미지의 가상적 깊이에 빠지는 대신 캔버스의 텅 빈 옆면을 좀 더 자세히 바라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회화는 여전히 이미지와 사물 속에서 회전하며 종종 통제된 상황 바깥으로 넘어간다.

 

 《Vera Verto》에 전시된 대부분의 작업은 말하자면 추상에 가까운 문법을 갖는다. 하지만 자세히 살피면, 그 중 온전한 의지와 당위를 가진 추상은 거의 드물거나 어쩌면 없다. 이들은 추상으로 머무르도록 회화를 내버려두지만, 여기서 추상과 구상은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이 경계 없음은 의식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무의식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이고, 어쩌면 전시를 통해 한 번 더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상황이다.

 

 회화는 그 무게 탓에 무조건적으로 늦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촉진되는 듯 보이는 오늘, 어쩌면 이건 여전히 회화만이 지니는 재능일 수 있다. Vera Verto》는 마법을 인용하며 회화의 낡음을 강조하고, 회화가 새로 갖는 한계를 쫓고자 한다. 다만 이처럼 끊임없이 중간에 놓이려는 유보된 상태는 의심을 자아내기 쉽다. 회화로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자 한다면 회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둘 중 어떤 질문이 더 고통스러운 것일까?

 

 정체 불명의 주문이 회화를 향해 겨누어진다. 과연 마법이 가능할까? 마법은 마법이 있다고 믿는 자들에게만 부분적으로 실존한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염원이자, 잉여에 가까운 인식 차원의 지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믿지 않는 자에게 종교는 공예이며 불신자를 겁박할 수 있는 마법의 저력은 아직까지 우리 지구에서는 관찰된 바 없다. 베라 베르토”, 잔이 되어 반쯤 굳은 생쥐를 위한 어설픈 마법은 어쩌면 그 자체로 충실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변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위한 것에 가깝고, 정교한 속임수로써 마법은 좀 더 자세해질 때 항상 도움이 된다.



  1. Jan Verwoert, 「Why are conceptual artists painting again? Because they think it's a good idea」, Translated by Hugh Rorrison, 『Afterall: A Journal of Art, Context and Enquiry』, Issue 12, Autumn/Winter, 2004. [본문으로]
  2. Alex Bacon, 「Surface, Image, Reception: Painting in a Digital Age」, RHIZOME, 2016, https://rhizome.org/editorial/2016/may/24/surface-image-reception-painting-in-a-digital-age/ [본문으로]
Posted by 황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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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5.22 18:30 삐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가 됐어요


00, 혹은 투명한 몸과 뒤집힌 세계


함윤이

 


범퍼! Bump!》 설치 전경


몸들은 부딪칠 때 가장 재미있다. 부딪치는 일은 천천히 사라지는 것, 또한 사라지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각주:1]

범퍼! Bump!(이하 범퍼)의 영상들은 서로 만나고 충돌하며 자신의 경로를 찾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전표처럼 놓인 한 쌍의 영상 작품들이 총 다섯 줄, 한가운데로 틈새를 만들면서 천장에 걸려 있다. (가장 마지막의 <Murika><Julie>만은 예외적으로 서로에게 보다 가까이 접해 있다.) 입구를 등지고 서면 오른쪽 행이 이소정의 작품들, 왼쪽은 박세영의 작품들이다. 나란히 걸린 한 쌍의 영상들은 서로 간의 느슨한 연계 속에서 함께 설치되었다.

위캔드의 전시 공간은 한 덩어리로, 분리된 영역 없이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 열을 제외하면, 관객들은 영상을 관람하기 위하여 각 작업에 할당된 의자와 헤드셋을 사용한다. 해당 영상의 소리에 집중할 때 영상들 사이의 마찰력은 한층 약화된다. 앞뒤로 반사되는 다른 이미지들, 프로젝터의 빛 등이 미약한 방해가 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범퍼의 직접적인 갈등은 물리적인 조건들 아래서보다, 관객들이 전시를 하나의 맥락으로 기억하는 순간 본격적으로 심화한다. 모든 이미지들은 정해진 공간에-묘사하자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각자 다른 스타일의 영상이 양옆으로 밀착되어 있을 때, 각 작품에 대한 인상은 전시 전체의 감상 속에서 각개의 변별 요소라기보다는 부분집합으로서 인지된다. 어떤 이미지들이 먼저, 또 나중에 떠오를 것인가? 동시에 범퍼의 영상들은 어쩌면 극장의 지위를 탐내는 방식으로 재생된다. 그들은 자신과 마주앉은, 헤드셋과 의자에 앉은 한 명의 관객에게 중심으로서 주목받기를 원한다. 어떤 스크린 앞에 마주앉더라도 관객들은 나를 주목하라는 이미지들의 힘 싸움에 휘말린다. 열을 따라 지그재그로 영상을 감상하건, 행을 좇아 각 작가의 행보를 살피건, 영상들은 서로 부딪친다. 무엇을 먼저 보고 또 누구를 다음에 보든, 모든 작업들은 서로 비슷하거나 달라서 변함없이 충돌한다. 충돌이란 만남의 또 다른 형태다. 그들은 하필 같은 전시장 안에 함께 설치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운명공동체다.

이미지들은 모두 다른 시공간에서 왔다. 만들어진 방법론 역시 각기 다르다. 동일한 풍경-캐나다의 온타리오 호수를 촬영한 <I love you Michael Snow>에서조차 그 차이가 드러난다. 모든 이미지들이 각자 가고 싶은 바가 다를지언데, 이들 간의 교집합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비약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분명한 공통점은 보이기는 한다. 이들은 모두 디지털 이미지다. 움직이고 있다. 움직인다는 점에서, 생명체와 유사한 궤를 갖는다. 그러나 이들의 몸을 이루는 것은 피와 살과 뼈가 아니다. 이들의 몸은 내부적으로 01의 이진법 프로그램이며, 외부적으로는 점·선··색상·소리 등의 요소들로 이뤄져 있다. 다만 첫눈에 보기에는 우리의 현실에 존재할 법한 피사체의 형태로 꿈틀거린다. 이 사이를 지나가야 한다.

 

너무 많은 이미지들이 도처에 있다. 쇠퇴한 이미지들은 01 속에서 부활 가능하다. 보드리야르는 그의 마지막 저서, 사라짐에 대하여에서 디지털 이미지를 일반적인 픽셀화의 우발적인 한 조각[각주:2]으로, 나타남이 없었기에 사라짐의 운명 또한 상실한 대상으로 평한 바 있다. 디지털 이미지들은 현실을 수치적으로 포착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나고 사라지는 일 자체를 잃어버렸다. 이제 그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는 중요치 않은 시대이므로-우리는 정말이지 온갖 가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이미지의 귀중함이란 개념은 별로 와 닿지 않는다. 디지털의 환영은 더 이상 늙지 않으므로, 그 운명은 그다지 팽팽하지도 않다.

두 명의 작가 또한 그 운명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사라질 수 없는 이미지들이 사라질 수 있게끔 총력을 기울인다. 이미지들의 삶이라도 되찾아주려는 모양이다. 태어난 적 없는 것에 생명을 부여하는 시도로써, 그들은 각자의 이미지들을 수집한다. 그들이 만난 형상들을 바라보다, 기어코 손을 댄다. 쇼트들은 서로 부딪치는 과정에서 자신의 원본이었던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혹은 함께 내걸린 스크린들과의 관계로 인해 그 자신의 의미를 변형시킨다. 이미지들은 지시체로부터 떠나간다. 떠나온 곳에서 각자의 시공간을 구축한다. 범퍼의 모든 작업들은 이동하는 움직임의 과정이다. 지시 대상이 존재하는 현실을 떠나, 이미지들 각자가 또 다른 의의를 형성할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하는 몸짓. 그들은 이미지들을 붙잡아 가능한 먼 곳으로, 애초 피사체가 가진 적 없던 새로운 운명을 향해 떠나보내고자 한다.

그들의 고집은 영상을 제작하는 방법론들로부터 시작한다. 범퍼의 영상들은 (동시대의 다른 영상 작업들과 마찬가지로)디지털 카메라 또는 편집 툴로써 제작되었다. 2020년에 와서 영상을 제작한 기기나 프로그램을 구태여 언급하는 일이 아무래도 사족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범퍼의 두 작가는 모두 필름 제작이 쇠퇴한 이후의 세대, 디지털 시대만을 주로 경험한 작업자들이다. 그들에게 이미지들은 디지털 제작물과 거의 동위에 위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미지에는 다시 한 번 디지털이라는 오래된 형용사를 붙일 수밖에 없다. 작가들 자신이 이미지 자체를 다루는 과정에서 그 개념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미지는 적분학의 데이터로 기록되되, 현실(작업자들 각자가 그들의 신체로 겪어온 시공간)과 다른 방식으로 탄생하여 작동해야 한다. 전시장의 스크린 속 지시체들은 우리가 현실에서 보아오는 수많은 사물들과 같은 이름 혹은 동일한 형태를 갖고 있다. 일순 이들은 제 2 롯데타워의 재현으로, 또는 토론토의 고층 건물이라거나 인천 부근의 등대 그 자체로 보인다. 그러나 재생과 동시에 이들은 우리가 알던 세계의 규칙으로 움직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쇼트 간의 배열 속에서 새로운 맥락을 얻거나, 편집 과정 안에서 낯선 외양을 획득한다. 그들은 재생하는 다른 이미지들과의 연계 속에서 새로운 장소를 발굴하도록 요구받는다. 범퍼01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프로그래밍 된 적 없는 영역을 구축하고자 하는 모순적인 투쟁이다.

 

범퍼! Bump!》 설치 전경


투쟁의 몸짓은 각각의 작업마다 다른 태도로 나타난다. 가장 첫 번째 열의 작업들, 유일하게 외부 스피커와 함께 굴러가는 <I love you Michael Snow>범퍼라는 제목의 외연에 가장 잘 부응하는 작업이다. 두 개의 영상은 서로에게 어깨를 맞댄 채, 동일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굴러간다. 각 영상의 움직임들은 서로에게 있어 지극히 대비된다. 박세영은 호수 너머의 이미지들로 카메라를 고정한다. 대상 하나를 척도로 삼은 뒤 카메라를 돌린다!” 맨 처음 빌딩의 정경(처럼 보였던 것)은 뒤집히고, 회전하고, 흔들리는 과정에서 점차 색깔의 덩어리로 변한다. 반면 이소정은 본인이 직접 돈다!” 호수와 그 맞은편의 풍경들 중앙에 서서 빙글빙글 회전한다. 호수와 황무지는 극단적인 움직임 속에서 희끄무레한 선으로 변한다. 그들은 원하는 만큼 움직인 뒤 다시 멈춘다. 다시 호수의 물결과 빌딩 숲으로 돌아오지만, 그 세계는 이미 갈라졌다.

두 개의 이미지는 길을 잃는다. 그들은 사라진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이제 온타리오 호수는 전과 다른 무엇이 되었다. 카메라의 기록 속에서 일차로 흔들린 형상들은, 편집 프로그램 내부에서 이차로 변형된다. 혹은 동일한 쇼트가 구간마다 반복하며 일정한 형상에 켜켜이 의의를 쌓는다. 이미지들은 다른 피사체와 엉겨 붙으면서 지시 대상들과의 거리감을 확보한다. 그들은 대상이 가졌던 본래의 모습(근사한 마천루와 호수)을 잃은 대신, 충분히 망가질 자유를 얻었다. 마천루의 꼭대기는 극단적 날카로움의 감각을 나타내려는 형태로 변환하며, 빌딩숲은 언제나 회전이 가능한 색채의 덩어리가 될 수 있다. 그들은 변형 가능한세상 속에서 자신의 지시체들을 떠난다.

<Hold it!><Winodwlicker>의 열에서부터, 관객들은 각자 의자에 앉아 헤드셋을 쓴다. 이 물리적인 조건이 관객들에게 각각의 역할을 요구하면서, 시청각의 직접적인 충돌은 한층 약화한다. 이제 영상들의 범퍼는 좀 더 내부적인 것으로 변한다. 관객들의 내부에서도 각기 다른 스타일의 영상에 대한 감상들이 부딪칠 것이다. 다만 좀 더 주목하고 싶은 쪽은 작가들이 작업 내부에 심어둔 장치들이 초래하는 충돌이다. 이 열에서부터 작가들은 각자의 이미지들이 갖는 무수한 가능성-무엇으로도 변형될 수 있으며, 어떤 가상이건 축조 가능하다-을 의식한다. 이로써 그들은 디지털 기기·프로그램의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미지들을 제작한다. 이소정은 이후 나타나는 작업인 <Splash>와 마찬가지로, 촬영 기계를 인간의 신체가 아닌 다른 곳에 부착한다. <Hold it!>의 카메라는 스쿠터 뒤편에 매달리면서, 작가가 연출할 수 있는 형상들을 대폭 축소한다. 녹화 버튼이 눌리고, 카메라는 보다 우발적인 방식으로 바닥을 촬영한다. <Hold it!>에서 중시되는 것은 포착되는 지시체라기보다, 흔들림 그 자체에 있다. 이미지는 자신을 태어나게 만든 지시체-아스팔트를 최대한으로 배반한다. 렌즈가 포착한 시야는 흔들림을 극대화하면서, 아스팔트를 석유 화합물이 아닌 전연 낯선 물질로 보이게 한다. keygen의 노이즈와 시각적 흔들림이 공명하면서, 아스팔트는 기기묘묘한 상징으로 체화한다. 생물이 탄생하는 순간, 또는 벌레들이 우글거림 같다. 관객 중 누군가는 이후 우글거리는 벌레들을 보면서 아스팔트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와 어깨를 맞댄 <Windowlicker> 또한 디지털 이미지들의 내부적인 흔들림을 가져오고자 한다. 연출자의 전면적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 그곳은 구글로 대표되는 웹 내부의 이미지들이다. 박세영은 자신이 보거나 만진 적 없는 이미지들을 가져와 가상의 타임라인을 만든다. 이곳에 기계-구글 번역기-의 목소리가 가세하며 새로운 규칙들을 형성한다.

처음에는 구체적인 대상들이 있다. 2 롯데타워와, 2007년 촬영한 강남구의 조감도가 그것이다. <Windowlicker>의 이야기, “롯데타워에 불현듯 등장한 빛의 기원을 찾아간다는 목적이, 이미지들을 재조립한다. 그 안에서 도심의 풍경은 빛의 추적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변화한다. 또는 빛의 기원을 추적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증명하는 외연으로써 움직인다. 누가 이들을 찍었는지(아마도 구글 맵 스트리트 뷰의 트래커들일 텐데) 몰라도, <Windowlicker>의 경로에서 본래의 용도들은 서서히 사라진다. 대신 그들은 새로운 역할 속으로 녹아든다. 영상에 등장하는 납작한 빌딩은 실제의 구글 어스 속 이미지의 왜곡된 화면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누구의 의도와도 맞지 않게 망가진 형상을 새로운 규칙 속으로 들여보내면서, 쓰러진 건물은 석양과 마주보는 지점으로 화한다. 그들은 <Winodowlicker>라는 그물망 속에서 (“빛의 근원을 찾는 게 쓸데없다/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혹은 자신들에게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운명을 찾아 나선다.

<Splash>는 전시장 내 작업 중 가장 직접적으로 사용한 기계의 특성을 드러낸다. 모든 푸티지는 물속에서 촬영되었다. 다시 말해, 방수 기능이 부착된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Splash>는 성사될 수 없다. 또한 모든 쇼트는 작가의 연출 없이 기록되었다. 이소정이 카메라를 바다로 던지면, 프로그램이 자동 기록을 시작한다. 이 때 뷰파인더를 확인하는 주체는 부재하다. 카메라는 단지 파도의 움직임에 맡겨진 채 물속의 시간을 포착한다. 연출하는 눈 없이 촬영된 이미지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모범적인 형상들을 모두 배반한다. 이들은 부옇고 흔들리며, 선명한 중심축을 탈피한다. 대신 파도에 자신을 내맡긴 기계의 눈으로 내부를 바라다보길 권한다. 우리는 바다 아래 납작이 누워 얼굴을 쓰다듬는 해초를 본다. 혹은 해초들이 우리를 내려다본다. 물 밖의 등대는 그 위치를 뒤죽박죽 바꾸며 나침반의 역할을 거부한다. 인간의 통제를 가능한 배제한 이들 이미지들은, 우리가 수없이 재현해온 감각의 새로운 틈새를 답사하고자 한다.

반대로 <Between the hotel and city hall>(이하 <Between>는 최대의 통제를 통하여 그 자신의 내러티브를 쌓는다. 여기에는 감각적인 규칙 몇 가지가 테제처럼 존재한다. 기계의 목소리가 녹음한 “Shot”“Reverse shot”을 번복한다. “shot”에서는 호텔이, “reverse shot”에서는 시청이 나타난다. 처음 이 내레이션은 이미지를 설명하는 주석 같다. 그러나 내레이션과 함께 나타나는 등장이 거듭 변화하면서, 목소리는 언명이 된다. “shot” 부를 때 눈을 휘둥그레 치뜬 여성의 사진이 등장하거나, “reverse shot” 호명과 함께 불꽃이 터지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호텔-시청의 진화체로 받아들인다. 규칙 안에서 언어는 의미를 달리하고 이미지는 하나씩 탈피를 시작한다. 마침내 비행기 안의 화면을 바라볼 때 사람들은 어지러워진다. 처음의 이미지들은 사라지고(그러나 영상이 끝난 뒤에는 또 한 번, 등장할 것이다), 호텔과 시청의 의미는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이미지들은 의미 너머의 것을 갈구하는 몸짓을 이미지로 드러낸다.

네 번째 열의 <사랑 (사이) 깍두기><Romantic Machine> 사이에서는 거의 마찰이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다른 맥락들로부터 침해받지 않을 때더 정확히 감상할 수 있다. 우선 두 영상의 길이는 모두 60분이 넘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위캔드 내 공간에서 관객들은 각자 60분씩만 예약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예상치 못한 문제로 인해 생겨난 환경이다. 그러나 그 점을 염두에 둔다 해도, 전체 전시 환경 자체가 1:1 관람을 필요로 하며,-각 영상에 연결된 헤드셋은 하나뿐이다-하나의 영상에는 하나의 관객만이 참여할 수 있음을 생각하면 네 번째 열은 다소 무거워진다. 만약 이것이 작가들의 의도라면, 범퍼의 영상들은 일부분만을 관람할 수 있도록, 혹은 몇 분만 관람하더라도 그 자신의 의도를 캐치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두 개의 영상은 분명 순차적인 감상에 더 적합하다. <사랑 (사이) 깍두기>에 등장하는 유기농맥주의 영상은 그 시간성을 염두에 두고 보았을 때 훨씬 짙은 농도를 지닌다. 이 유사한 얼굴들이 매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형태적으로 유사한 행위(합주와 공연)를 번복해왔기 때문이다. <Romantic Machine> 역시 마찬가지다. 빛들의 등장은 치밀한 구성 끝에 배치되어 있으며, 각 광원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들의 빛과 소리를 감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전제는 암흑과 고요다. 등대라는 주인공이 스크린의 광원으로 번지는 클라이맥스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극장과 같은 독립된 장소가 필요하다.

반면 뒤편의 영상들-대망의 마지막 <Murika!><Julie>은 서로에게 엮이는 과정 속에서 의의를 확장한다. 두 영상의 격차는 너무도 극명하여, 가벼운 문장들로 분리할 수 있을 정도다. <Murika!>는 말이 많고 <Julie>는 고요하다. <Julie>는 느릿하고 <Murika!>는 부산스럽다. 다루는 색상의 톤 역시 극명하게 대비된다. 멸망 직후처럼 붉게 저문 <Murika!>의 우주에 비해, <Julie>의 우주는 한낮의 쨍한 해안가 속에서 희고 푸르다. 잠시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둘을 동시에 조망하면, 각각의 리듬은 너무 달라서 차라리 하나의 세트처럼 보인다. 동일한 배경을 각자의 스타일로 움직인 <I love you Michael Snow>와 달리, <Julie><Murika!>는 그들 각자의 움직임을 담을 수 있는 적합한 배경에서 시작했다.

<Murika!>의 배로 이동한다. 조그마한 선박이지만, 그렇기에 그 요동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Murika!>의 풍경은 너무나 혼란스러워서-사람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바다를 가리고, 자막들은 알아보기도 전에 지나가며, 소리와 이미지는 매번 어긋난다.-한 지점에 집중하기란 어렵다. 박세영은 다른 작업들에서 계속 그래왔듯, 여기에서도 대혼란을 꾀한다. 그는 혼돈을 정리하는 대신, 혼돈 속에 들어가 보기로 결단한다. 그 순간 이곳은 오해와 왜곡이 진실인 세계가 된다. 가끔은 “seagulls!” 부를 때 갈매기들이 날아가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기표와 기의의 어긋남으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온갖 층위가 얹힌 우주와 석양이다.

<Julie>의 바다는 너무 거대하기에 멈춘 듯 보인다. 그 안의 무수한 움직임들을 한 번에 알아보기란 어렵다. 바위들은 실제로 멈춰 있다. 다만 몇 차례 분할된 쇼트로 반복하여 나타난다. 갈매기(여기서는 seagulls가 아닌, Julie의 이름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새)나 해안가의 이끼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반복하여 등장하는 식으로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나간다. <Julie>의 태양은 물속에서 흔들리며 하나씩 늘어난다. 바위들은 갈매기를 떠나보낸다.

얼핏 보기에 두 작업은 다른 영상들보다 훨씬 얌전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인간의 손을 최대한 배제하려 한다거나, 기계의 목소리로 서사를 구성하려는 몸짓은 여기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같은 동작은 이들에게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Hold it!>의 아스팔트에 흔들림이 어울리듯, <Julie>의 바다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Between>이 목소리 안에서 형상을 구축해가듯, <Murika!>는 이동하는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픽션을 발견한다. 영상의 뼈대는 촬영한 쇼트들의 내부에서부터 발생한다. 그로써 이미지는 자신들에게 적합한 신세계를 발견하며, 동시에 근원이 된 지시체와의 관계를 유지한다.


범퍼! Bump!》 설치 전경

 

그들의 이미지는 여전히 사라지지 못한다. 이들은 언제고 복사될 수 있으며, 사라질 일이 없기에 마땅히 애틋해질 수도 없다. 그 대신 그 자체가 하나의 허구로, 우화로 남아야 하고, 그럼으로써 사건이라는 풀리지 않는 허구에 공명[각주:3]에 가까워질 때까지 멀어져 가고자 한다. 이미지들은 자신의 근본을 왜곡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조성할 수 있는 거리감을 형성한다. 그것은 빛을 추적하는 모험담이기도 하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해초들이며, 대혼란의 틈새이고, 바위들의 시선이기도 하다.

이미지들은 자신의 몸체였던 것을 떠나 새로운 땅에 정착하고자 애쓴다. 지시체들로부터 떠나온 이미지들은 영혼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영혼들이 충돌하는 순간 무엇이 새로 태어날까? 충돌은 언제나 움직임 속에서 발생한다. 영상은 재생하는 그 순간부터 끝을 향해 달려가며, 타임라인이 끝나면 다시금 시작한다. 이미지들은 스크린 안에서 운동을 되풀이하며 재차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는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들은 여전히 디지털 수신호에 불과하다. 다만 우리가 그들과 마주앉아서 전면으로 부딪칠 때, 그 충돌의 대화가 시작되면서, 범퍼는 우리가 지금껏 보아온 적 없이 투명한 몸들을 내보인다. 몸들은 뒤집힌 땅 위에 서 있다. 아무것도 현존하지 않는 세계에서, 우리가 전혀 다른 감각에 접속하도록 손짓한다. 그 사이를 지나가야 한다.

 

  1. 장 보드리야르, 『사라짐에 대하여』 31페이지, 민음사, 2014. [본문으로]
  2. 같은 책, 79페이지 [본문으로]
  3. 같은 책, 65-66페이지 [본문으로]
Posted by 황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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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로서의 조각가


최하늘



1.


 모더니즘을 조금 더디게 수용한 한국 현대미술은 서구의 방식을 나름대로 소화시켜가면서 일군의 뛰어난 작가와 기획자에 의해 꾸역꾸역 발전의 방향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동시대성을 획득한 이후 한국 현대미술은 다소 길을 잃은 모양새로 평가받곤 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중 시장이 무너진 한국 현대미술이 오로지 관 중심의 공적 기금에 의존해 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취약한 구조의 공회전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또한 쉽게 개선될 수 없다는 점 역시 대부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한국 현대미술이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국내 미술대학은 이와 반대로 모더니즘의 시간에 멈춰있는 듯 보인다. 물론 그렇지 않은 학교도 있겠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미술대학은 매체에 따라 학과를 분리시켜 교육하고 있다. 주로 조소과라고 명명된 학과에서는 전통적 재료를 다루는 기술을 연마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조소학과 학생들은 돌, 나무, 흙 등 아주 오래된 조각의 재료에서부터 금속, 3D 프린팅, 화공약품 등 비교적 최근의 기술이 접목된 분야까지 폭넓게 수학하는데 이와 같은 재료, 기술 중심적 방식은 일본 혹은 미국에서 서양의 모더니즘을 배워 귀국한 1세대 현대미술가들에 의해 정립된 방식이다. 다만 이와 같은 교육 방식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수정 없이 이어져오고 있으며 이는 동시대 현대미술계와 크게 엇나가고 있다.

 한국 근대 조각은 서양과 크게 다르지 않게 물성과 재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였는데, 이는 단순히 표현의 수단으로써 사용되는 재료에 대해서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현상학적 논의와 더불어, 마찬가지로 서양에서 수입된 존재론적인 입장이 가미되었는데 즉, 재료는 작가의 의식 전반을 상징하고 그것으로 만든 조각에는 특수한 작가적 체험이 깃들어져 있거나 혹은 사회적인 맥락을 갖는다는 태도로 조각 논의의 자장을 키워 나갔다. 또한 여기에 한국적인 것을 탐색해야 한다는 지상과제까지 덧붙여져서 조각은 국지적 한계를 초월하며 전통과 현실을 잇는 매개체가 되었다.

 다케우치 도시오는 자신의 저서 미학 예술학 사전에서 실재적인 것과 비실재적인 것이 합체된 것으로서의 재료를 주장한다. 조각가에게 재료가 중요하다는 점을 전제로 하는 이와 같은 해석은 재료의 물리적인 면이 작업의 근본이 된다는 일반적인 주장과 더불어 재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상징, 맥락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설정한다. 쉽게 말해, 전후 한국에서는 도처에 철이 널려 있었고 이 철은 조각가들에게 선택되어 여러 용접 조각으로 재탄생되었다. 철은 전후의 분위기를 전하는 데 매우 적절한 재료로 여겨졌으며 대부분의 용접 조각은 주로 전쟁의 상흔이라고 하는 세대의 공통적인 공감대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후 철은 근대성의 상징으로 고정되었고 용접이라고 하는 특수한 기술로 그간 흙과 나무가 다룰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조형을 다루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명료한 해석은 주로 여러 재료를 다루는 조각만의 특수한 부분이라 여겨지며 하나의 특징으로 부각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재료 중심주의적 사고를 낳은 양날의 검이었다


 조각과 그림의 사이에 있는 미묘한 다른 지점을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재료 가공 장소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림과 다르게 조각은 재료를 가공할 수 있는 특수한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한다. 단순히 철이 널려있다고 해서 모두가 용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용접에는 아세틸렌과 산소 가스가 필요했으며 철을 달구고 이어 붙일 수 있는 특별한 장비가 필요했다. 김정숙(1917-1991)은 미국 유학 후 1957년에 홍익대학교의 교수로 취임하면서 용접 조각실철사 조각실을 개설해서 용접 조각의 유행에 힘을 보탰다. 또한 이와 더불어 대부분의 주류 조소과에는 돌을 가공할 수 있는 석조실과 흙을 다루는 소조실을 꾸렸고 이를 통해 학생들은 전통 재료의 기법을 폭넓게 연구할 수 있었다.

 김종영(1915-1982)이 조소과 교수로 부임한 서울대에서는 그를 따라 추상 조각을 제작하는 학생들이 많았으며 이후 학교 차원에서 재료에 대한 탐구를 장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보수적인 전통 재료에 국한된 교육은 당시 모든 사물을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포스트모던적 태도가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였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굉장히 보수적이었다. 또한 이와 더불어 전통적인 조각 재료인 흙과 나무 돌 금속이 갖는 상징성은 더욱 강조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와 같은 태도는 조각가가 재료의 다양성과 더불어 그 전통적인 맥락, 특성과 조화되지 못한다면 제대로 조각을 만들 수 없다는 섣부른 결론을 나았고, 많은 조각가들이 재료의 물성에 대해 더욱 천착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후 작가들은 모든 재료가 시각, 촉각과 더불어 정신적, 심리적, 정서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물론 한국의 본격적인 산업화 이후 쏟아지는 신소재가 조각가들을 흥분시켰다는 사실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종래의 독해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더 이상 돌과 나무 금속에 만족할 수 없었던 조각가들은 플렉시글라스(아크릴), PVC, 스테인리스스틸과 같은 산업재료와 더불어 새로 출시된 산업용 접착제나 리벳 등을 실험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과거에 행해져온 소재적 특성을 이용한 분석이나 상징이 덮어씌워졌다. 이와 더불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이 한국을 휩쓸며 조각 개념에 대한 해체와 동시에 설치 장르의 대두가 본격화되었고 한국의 현대미술이 동시대성을 장착하기 시작하면서 비미술적 재료의 사용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후 조각 외에도 재료에 대한 작가들의 관심은 현대미술이 갖는 하나의 큰 특징으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비미술적 재료를 사용하는 조각가들이 등장하였다고 하나, 그들은 비미술적이라는 특징 때문에 더욱 재료에 집착하는 퇴행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한국성을 상징하는, 산업화를 상징하는, 노동을 상징하는, 여성을 상징하는, 소수자를 상징하는 재료와 수행성을 모색하고 이를 통해 제작된 작업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상징성에 의해서만, 미술계 내에서의 탈식민적 지위 속에서만 독해될 수 있었다. 또한 반대로 조각의 전통 재료들은 낡은 것으로 평가 절하되기 시작하며 작가들과 멀어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재료에 대한 논의는 해당 재료가 사회 안에서 어떻게 상징가치를 획득하는지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고 그저 새롭게 등장하는 재료에 기존의 프레임을 덮어 씌워버리는 악순환이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는 독해 양상과 더불어 간혹 재료를 신성시하는 모습까지 포착되곤 했다. 이를테면 현대 산업 기술의 발달로 인한 조각 기술의 다양화는 곧 조각 재료의 다양한 쓰임과 같으므로 이것은 조각 작품의 형태뿐 만 아니라 재료가 물리적 매체 차원을 넘어서 조각 자체의 존재가치를 형성하는 결정적 요소”(이창림, 2002)라고 여겨지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태도는 여전히 조각을 독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준거가 되고 있으며 동시에 모든 조각가들을 옳아 매는 족쇄가 되었다.

 물론 조각가에게 재료에 대한 이해와 물성에 대한 탐구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것이 근대를 관통하는 모더니즘의 핵심이었다는 사실 역시 인지하고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지점에서 내가 드는 의문은 조금 더 미래 시제에 속해있으며 조각가라는 직업에서 출발한다. 앞으로 산업 기술의 발전은 계속될 것이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조각가는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만 할까. 새로 등장하는 재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전통 매체로 회귀하는 것이 정답일까. 새로운 재료를 계속 쫓아가면서 맥락을 부여하는 것은 작가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기술을 앞지르는 조각이란 불가능한 것일까. 이와 같은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동시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흥미로운 조각가 몇몇을 대조하면서 작은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2.


 물론 여전히 동시대 조각가들은 재료에 천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여러 작가들이 다양한 재료를 동원해 조각의 영역을 넓혀왔지만 그에 비해 조각가가 생각하는 조각의 범위 자체는 어느 적정 수준 이상으로 확장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조각이 나날이 해체되는 와중에 조각은 물질을 동반한다는 기본 명제만큼은 지키기 위해 조각가들은 물질을 옹호했다. 이와 같은 불일치는 결국 조각가들에게 신소재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라는 명령을 불러왔고 이는 일정 부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다만 설치미술 등 미술의 다양한 확장을 경험한 작가들은 이제 더 이상 전통 재료에 국한되지 않은 새로운 물질 혹은 조각에 적합하다고 여겨지지 못한 물질을 적극적으로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지점에서 권오상(1974-)의 입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홍익대학교를 졸업할 시점부터 조각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는 무거운 조각을 피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돌을 사방에서 사진촬영하고 이를 똑같이 아이소핑크로 조각한 뒤 그 위에 각각의 사진들을 오려 붙이는 방법론을 창안했다. 사진이라고 하는 평면 매체를 조각에 성공적으로 입힌 그는 자신의 방법론을 스스로 데오드란트 타입이라고 칭하며 관련 연작을 진행해왔다.

 다만 그의 사진 조각은 처음부터 한계점을 안고 출발했다는 취약점이 있었다. 사진 자체를 수렴한 그의 조각은 애당초 그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아주 즉각적이고 간단 명쾌한 대답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단계가 없이 말끔하게 해소된 그의 질문은 새로운 질문을 억지로 찾아야만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조각 표면을 구성하는 물질적 재료에 더 천착하는 경향을 벗어날 도리가 없었는데 이는 개인이 극복할 수 없는 산업 차원 규모의 고민이었다. 외려 사진술의 발전을 기다려야만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인 그는 위와 같은 한계점을 인식한 뒤 2003년부터 과감히 더 플랫연작을 시작했고 뒤이어 2005년부터는 더 스컬프쳐연작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데오드란트 작업이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목표를 성취했지만 제작 과정이 매우 복잡하며 제작 기간도 길다라는 단점을 언급했다. 즉 그는 과거의 전통 조각이 갖는 창작 과정의 지난함 역시 조각의 무게만큼이나 그가 피하고 싶은 것임을 천명하고 있는데 이 지점에서 나는 그에게 사진술의 발달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만약 사진술이 지금과 다르게 평면의 지지체가 아닌 입체적인 방식으로 출력이 가능해진다면 그의 입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물론 그가 손수 제작한 사진 조각은 이미 사진술의 시간을 앞질렀다고 볼 수 있지만 그가 기술 및 재료에 매우 의존적인 작업을 전개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그의 작업을 위태롭게 만든다.

 또한 이미지가 전면에 등장하는 그의 조각은 덩어리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가벼운 재료들을 손쉽게 은폐한다. 완벽하게 마감된 조각의 표면 어디에서도 아이소핑크의 흔적은 찾을 수 없는데, 이는 그가 여전히 가소성이 높은 산업재료의 사용이 큼지막하게 드러내는 것을 이미지 차원에서 부담스러워한다고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그는 여전히 모더니즘적 완성 개념을 본인 조각에 도입하고 있다. 물론 그는 지금도 한국 현대 조각계의 주축으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추후 그의 작업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쉽게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 역시 본인의 한계를 매우 잘 인지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오상과 매우 유사하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종이조각을 만들고 있는 황수연(1981-)은 권오상이 유지하고 있는 조각의 불변성마저도 해체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프린트된 종이 혹은 직접 색을 입힌 종이를 절개해 전개도를 만들고 이를 작업실에서 접합시켜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그의 조각은 매우 연약하다는 특징에서 조각의 오래된 정의를 공격하고 있는 일련의 시도와 궤를 함께 한다. 또한 사진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재현 이미지가 등장하는 권오상의 조각과 다르게 황수연의 조각은 종이에 그 어떠한 이미지도 없다. 그렇기에 그의 조각은 권오상의 조각과 다르게 재료 자체가 조금 더 부각된다. 물론 사람 혹은 사물, 다른 생명체를 조형하는 조각은 때때로 구체적인 형상을 드러내기도 하며 작가 스스로 제목을 통해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은유하기도 하지만, 그의 조각 대부분은 어떤 모듈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완성된 조각의 형태보다는 재료 자체, 작가의 수행성이 강조된다.

 권오상이 전면에 극적인 이미지를 통해 내부에 위치한 재료를 은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면, 황수연은 그와 반대로 이미지의 은폐를 통해 재료와 작가의 수행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만 황수연의 태도 역시 과거 모더니즘, 혹은 그 이후 재료에 대해 사유해오던 조각가들의 태도와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미술 혹은 조각에 적합하다고 여길 수 없는 재료로 조각을 생산하는 태도는 결국 작가에게 새로운 재료를 찾으러 다니게 만든다. 물론 아직 그에게 종이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무궁무진한 형태가 남아있겠지만 동시에 종이라는 재료가 조형할 수 있는 형태는 꽤나 한정적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또한 재료의 물성을 뛰어넘는 형태가 조형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이 요구된다. 결국 재료와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야만 한다는 순환은 변하지 않는다.

 황수연과 비슷하지만 또 다르게 문이삭(1986-) 역시 흥미로운 지점을 선보인다. 그는 3D max를 이용해 스티로폼을 잘라 어떤 형상을 도출하고 이를 날 것 그대로 전시장에 배치한다. 물론 스티로폼의 표면에 특수한 가공 처리를 하지만 그렇다고 스티로폼이라고 하는 재료를 완전히 지워버리지는 않고 관객 역시 해당 물질이 스티로폼이라는 사실을 손쉽게 인지할 수 있다.

 오픈 소스를 이용해 조각을 생산하는 작가들은 여럿 있어왔지만 그의 독특한 지점은 이를 전시장에 배치할 때 과거의 문법이 아니라 3D max의 가상공간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점에 있다. 그의 조각은 마치 마우스 커서를 돌리면서 화면을 회전하는 형식과 유사하게, 관객이 몸을 움직이면서 완전히 결합되지 않은 어떤 3D 렌더링 개체의 전개도를 탐색하게 만든다. 즉 그는 기술적 환경을 이용해 제작된 조각의 배치를 통해 조각의 시간성과 운동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조각이 제작되는 방식에 투과된 기술적 환경이 강조되는 결과를 도출한다. 더불어 이는 결과물로써 제시되는 조각의 물성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 관객은 그의 조각이 꼭 스티로폼이어야만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고민은 현대사회에서 조각가의 위치, 현대적 기술의 한계점을 직시하게 하며 작가의 방법론이 갖는 기술적 한계는 부각된다. 물론 그가 스티로폼이 아닌 다른 적합한 재료를 찾는다면 과연 그가 다른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나의 추측은 그에게 있어서 스티로폼은 그저 가소성이 좋다는 이유로 동원된 것이며 더욱 간편하고 실용적인 재료가 등장한다면 그는 언제든 조각의 재료를 바꿀 것이다.

 조각을 통해 기술적 환경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는 대체로 조각의 재료가 작가에게 부여한 어떤 속박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있어 동원되는 물질은 그저 기술에 용이한 조건만을 갖추면 되는 것이다. 만약 고도의 절삭 기술이 지금보다 더 보편화된다고 하면, 즉 스티로폼보다 딱딱한 물질도 쉽게 자를 수 있는 기술이 보편화된다면 그의 재료는 더욱 단단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그가 재료에 대해 일정 부분 해방되었다고 하나 그만큼 그의 기술 의존도가 다른 작가들에 비해 높다는 점은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작가들과 조금 다르게 조각가 권현빈(1990-)은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재료가 개인의 취향을 우선했다는 사실을 학위 논문에서 숨기지 않는다. 특히 그가 구름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하는 스티로폼은 비교적 가벼운특성 덕분에 외부의 개입 없이 개인의 역량으로 통제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과거의 재료는 그의 생각 속도를 따라오기에 너무 무거운 재료였으며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매 순간 바뀌는 형태를 표현하기에는 스티로폼이 가장 적절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또한 스티로폼과 동시에 천, 비닐, 실란트, 핸디코트, 우레탄, 레진, 각종 코팅제를 사용하는 그는 결국 조각의 재료 선택에 있어서 빠른 속도감을 가장 중요한 선택 근거로 들고 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제작 과정에서의 실용성을 바탕에 둔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재료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조각의 고정된 정의를 반영하지 않는 방식은 제작에서 역시 이어진다. 스티로폼을 자른 뒤 몇몇 부위에 실란트와 핸디코트를 바르는 방식은 스티로폼의 몸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육중한 덩어리감을 가지고 있으나 보는 이는 스티로폼의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으며 물질에게 압도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산업재료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색이나 부피를 크게 변형시키지 않음으로써 그에게 있어서 스티로폼은 여러모로 적절하게 선택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만약 구름을 표현하기에 스티로폼보다 조금 더 적절한 재료가 등장한다면 권현빈은 고민 없이 새로운 재료로 교체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이와 같이 재료 선택에 있어서 작가의 자의적인 편리함을 강조하고 재료가 날 것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반대로 말해 작업의 중추가 재료가 된다는 과거의 방식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즉 전시장에 노출된 스티로폼은 한국 현대 산업의 결과물로써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과거 용접기술과 철이 등장해 국전에 출품된 추상 조각들이 대부분 용접 조각이었던 시절을 상기시킨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판단 유예한 현실을 조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각가 부모를 둔 그가 열심히 돌을 갈아 만드는 부모의 작업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조각을 지속해나갈지 고민하는 것이 그에게 중요한 과제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형상을 도출하기 위해 적합한 재료를 찾는 과정에서 과거 세대와 확실한 차별점을 두고 있지만, 그 이후의 과정, 즉 스티로폼의 사회적 상징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권현빈과 같이 재료 선택에서 일정 부분 해방된 작가로 오은(1988-)을 들 수 있다. 그가 201911월에 스튜디오148에서 개최한 개인전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을 보면, 전시장에는 30여 점의 회화와 조각이 놓여있었고 대부분 한국 근현대미술의 명작을 재현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가 재현하고자 했던 한국 미술사의 중요 저작들은 고희동에서부터 박이소까지 매우 폭넓은 시간을 설정하고 있는데, 작가는 해당 작업의 선택 기준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중 이쾌대 등 월북 미술가의 작업이 선택되었고, 김복진, 윤효중, 김종영을 선택함으로써 계파에 입각해 조각가를 선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료히 했다. 여기에 나혜석과 같은 여성 미술가도 포함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으며 오윤의 판화와 박서보의 묘법을 동시에 재현해 이와 같은 선택 기준이 진영에 의해 나눠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에 대해서 작가는 해당 전시 도록에서 자세히 보면 우리 미술사의 특정 순간순간들을 각각 지시하며 자리하고 있다고 말하고 여기에 기본적으로 성취의 순간들이기도 하지만 논란 혹은 파탄의 순간들이기도 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뒤엉킨 순간순간들을 견습생의 눈으로, 마치 자화상 습작을 그리듯이 하나하나 렌더링한다고 말하며 이와 같은 기준이 모두 자의적인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즉 그가 선택한 14점의 회화와 17점의 조각은 모두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 미술의 주요한 순간들이며 무엇이 이와 같은 작가들을 매료시켰는지 탐색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작업의 재현을 통해 어떤 정신성을 시뮬레이션한다는 목표를 두었고 그것이 향토, , 원형, 민족, 전통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물론 그의 재현이 완벽하지는 않고 본인 역시 완벽한 재현을 목표로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천명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탄생한 군집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일종의 동시대적 자화상이 되길 희망하고 있는 상태에 놓이며 모든 선택을 관객에게 떠민 채 자기 자신은 그저 하나의 조각이 되어 전시장에 어물쩍 배치된다.

 그의 의도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지금 여기서 내가 논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다만 내가 전시장에서 마주한 조각의 재현물들은 하나같이 모두 엉성했다는 점이 내 논의점과 부합한다. 물론 그 엉성함은 전시장 안에서 통일되고 정제된 미감이었으며, 이를 통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전시장에 마련된 캡션에는 원작과 재현물을 병치시킨 사진이 있었고 해당 자료와 본인의 재현물이 얼마나 비슷한지, 얼마나 다른지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그가 조각을 재현할 때 사용한 재료들은 석고와 아이소핑크, FRP등 매우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으며, 이는 간혹 원본과 동일한 재료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재료가 되기도 했다. 평면을 입체로 재현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원작이 소실되어 크기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임의로 재현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과거의 작업을 소환하는 것이 어떤 충실한 리서치에 기반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어떤 구색을 맞추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서 원본을 조형하기 위해 동원되는 재료는 모두 실용성에 기반하고 있다. 재료 소환에 있어서 가공의 용이함을 가장 큰 기준으로 잡고 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그가 재료 사용에 있어서 조각가들이 겪는 고통을 일종의 일반적인 사실로 적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몇몇 작품은 실제가 아닌 사진만으로 원본을 접했고 작가는 조각을 기록하기 위해 찍은 사진의 각도 이외의 부분은 과감하게 마무리를 생략했으며 실제 조각의 부분만을 채집해 재현하기도 했다. 관객은 김경승과 윤효중의 기념비 조각을 재현한 오은의 조각 뒤편에 있는 핑크색의 아이소핑크를 낱낱이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태도는 전시장 곳곳에 널려있다. 브론즈로 만든 김경승의 맥아더 장군상을 작가는 석고로 재현하고 있고 나무로 만든 김종영의 자각상 역시 석고로 재현했으며 권진규의 테라코타 역시 석고로 재현되었다. 마찬가지로 오윤의 판화도 캔버스에 유채로 그려졌으며 종이에 먹으로 그린 박이소의 그림 또한 캔버스에 유채로 재현되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어떤 형상의 느슨한 재현을 목적으로 하되 재료마저 그와 동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대학에서 혹은 그 이후에 취득한 여러 가지 주조 기술을 동원해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의 재현만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석고와 아이소핑크는 그저 하나의 매뉴얼에 불과한 것이다. 만약 그가 석고와 아이소핑크보다 더 간편하고 손쉬운 재료를 새로 매뉴얼에 추가한다면 그는 주저 없이 새로운 재료를 사용할 것이다.

 아처럼 여러 가지 산업 재료를 혼합해 전통적 의미에서 완성된 조각처럼 보이게 하는 그의 능력은 어쩌면 연금술사와 닮아있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섞어 사용할 것이며 이와 같은 태도는 모종의 위트, 후련함을 선사한다.

 

 분명 누군가는 거대한 자금을 들여 과거 유물의 동위원소를 분석하고 이를 동일하게 제작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원본 개념을 뒤흔들고 있다. 또한 누군가는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사용해 조각을 뛰어넘는 건축적 스케일에 도전하며 과학과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조각가들이 재료를 탐구하고 도전하는 자세는 여전히 유효하며 중요하다. 이 단단한 명제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나간 시간은 우리에게 다른 태도를 갖게 만들었다는 사실 역시 중요하다. 조각의 언어는 여전히 고정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재료 그 자체가 작업의, 전시의 결과물이 되는 시기는 종결했다. 우리는 여전히 전시장에 너저분하게 펼쳐져 있는 부서질 거 같은 감각에 흥미를 상실한지 오래다. 한창 3D 프린터 기술이 보급화되고 활발하게 논의가 전개되었을 때 전시장에 놓여 있던 낮은 사양의 프린트물은 이제 더 이상 신기하지 않고 그저 가난함을 은유하는 상징물로 독해될 뿐이다.

 이제 글의 서두에 적어놓은 질문을 다시 소환해보자. 조각가는 과연 언제나 새로 등장하는 기술과 재료를 따라다녀야만 하는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조각가는 이와 관련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리는 이제 완성의 개념마저 기술과 재료의 시간에 빼앗겨버렸다. 과거 돌과 나무, 흙을 전문적으로 깎던 조각가의 위상은 온데간데없다. 이런 상황에서 조각가들은 전문 기술자의 지위를 과감히 내려놓고 비기념비를 만들며 지위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낡은 것들을 그러모으는 호더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점도 슬며시 깨닫게 되었다. 이제 조각가는 물질과 재현의 세계에서 마술을 부리는 연금술사가 되어야만 한다. 과거 무시당했던 직공이라는 지위가 주던 낭만적인 태도를 벗어난 방향성은 조각의 매체적 실존 자체, 물질의 실존 자체를 우려하는 지금의 상황과 결합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가상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물질을 옹호하고자 했던 과거 조각가들의 태도를 계승하는 것이며, 이를 시대에 맞춰 새롭게 변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연금술사가 화려한 효과를 동원해 환심을 샀던 것과 동시에 의심을 받았던 것처럼 제 맘대로 재료를 혼합해 기존의 질서를 교란하는 조각가에게도 거짓으로 점철되었다는 혐의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거짓은 투명하며 내부를 비추고 그렇기에 재료를 사용하는 태도 자체는 맥락화된다. 그제야 젊은 조각가는 자신의 원론적 단점을 보완할 수 있으며 부담을 떨치고 매체에 집중할 수 있다. 이제 조각가에게 짊어진 부담은 말끔하게 해소된다.

 

Posted by 황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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